198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후버(Huber)교수와의 하루 데이트

[칼럼] 배진건 배진(培進) 바이오사이언스 대표·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로버트 후버 교수가 강연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창립 30주년 기념 2019년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KSMCB) 학술대회 마지막날 아침 198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로버트 후버(Robert Huber) 교수를 호텔에서 개인적으로 만났다. 필자가 고문으로 있는 '우정바이오'에 모시고 가기 위함이었다.

이날 방문은 후버 교수가 KSMCB 기조강연을 마친 후 우정바이오가 건설 중인 신약클러스터에 관심을 표해 이뤄졌다. 우연히도 '1988+1'년과 '30'이라는 수가 공통점이다. 우정바이오도 KSMCB처럼 창립 30주년이고 후버 교수 표현대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30년이 됐다.
 
사진: 로버트 후버 교수 부부와 필자(가장 오른쪽).

이번 후버 교수와의 첫 만남은 KSMCB 학회가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9월 30일 오후 1시, 행사장인 코엑스 4층이었다. 가다가 부인과 같이 걸어가는 노부부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됐다. 다가가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같이 코엑스 401호의 행사장에 들어갔다.

만남은 그날 저녁 'Presidential Dinner'가 열린 한강의 세빛둥둥섬에서도 이어갔다. 이곳에서 KSMCB 서영준 회장님, 우정바이오 천병년 대표와 함께 후버 교수와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필자가 위스콘신 맥아들 랩 포닥일 때 서영준 교수는 밀러(Miller) 교수의 학생으로 시작했다.

필자는 2일 호텔에서 우정바이오로 모시고 가는 차 안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회장 만찬'에서 여러 한국의 연구자들과 나눈 담소, 무엇보다 저녁 후 이어진 한국 성악가들의 축하공연도 노부부가 대단히 즐기셨다고 말씀하신다.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필자는 어느 구조를 푼 단백질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후버 교수는 1976년부터 뮌헨공과대학과 막스플랑크 생화학연구소에서 단백질을 연구했으며 식물의 광합성에 따른 단백질 결정화를 규명하고 3차원 구조를 밝히면서 광합성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유기물을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후버 교수는 해당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 다이젠 호퍼, 하르트무트 미헬 등과 함께 노벨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그러기에 필자는 당연히 노벨상을 받은 광합성 단백질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의외로 1970년 바이엘(Bayer)과 협력으로 그들의 억제제(inhibitor)를 사용해 트롬빈(Thrombin) 구조를 처음 풀어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질량분석법(Mass Spectrometry) 등 부속 기계들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기에 역시 힘들었던 처음 것에 대한 애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37년 생이시기에 만으로 82세인 노교수는 아직도 매일 연구소에 출근하신다고 한다. 집에서 13㎞ 떨어진 곳을 차가 아닌 자전거로 출퇴근하신다고 한다. 2년 전부터는 ‘전기자전거(electric motor assisted bike)’를 구입해 타고 다니기에 힘이 조금은 덜 든다고 하신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제주도에서 1박 2일 자전거 여행을 할 때는 경치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이상하게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어디를 가든 앞 바람이 불어 너무 힘들어 기진 맥진했다고 하신다. 제주도는 3다(多)의 섬이라 돌, 여자 외에도 바람이 많다고 덧붙였지만 그 때 방향이 바뀌어도 왜 앞바람인지는 나도 설명 드릴 수가 없었다.
 
사진: 우정바이오에서 (왼쪽부터)필자와 로버트 후버 교수, 천병년 대표.

우정바이오는 신약개발 인프라 및 생태계 조성을 위해 신약개발을 추진해 경기도 동탄에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를 건설 중이다. 신약클러스터는 첨단 실험동물 센터와 약물 고속 스크리닝(HTS) 센터, 전임상 특수 이미지센터, 면역항암/대사질환에 최적화된 비임상센터 등이 갖춰질 예정이다. 특허 및 법률자문, 기술지원, 금융기관 및 벤처캐피탈 등이 입주해 기술평가 및 경영자문 등을 제공하게 된다. 필자는 기술평가 단장을 맡았다.

후버 교수는 우정바이오 본사에서 신약클러스터의 취지와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신약클러스터 건설현장을 천 대표와 함께 답사했다. 천 대표는 "신약개발에는 타깃 분자에 대한 구조적, 기능적 이해와 더불어 질병-의학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고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과 분야별 전문가가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는 전문가들이 한 건물에 모여, 협력과 토론을 통해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약개발 기업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로버트 후버 교수(가장 왼쪽)가 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건설 현장을 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여기 신약클러스터 건설 현장이었다. 필자도 첫 방문이었다. 비 오는 날 현장 방문을 마치고 맛 있는 갈비 점심을 들었다. 점심 후 후버 교수를 모시고 다음 방문지인 판교의 큐리언트로 올라가는 중에 이 분이 컴퓨터를 꺼내어 PT 자료를 보신다. 왜 그것을 차 안에서 보시는 지 물었다. 본인이 짧은 강연을 한단다. 그럼 나도 듣고 싶다고 밝혔다. 짧은 강연이라도 노벨상 수상자는 다시 자료를 점검했다. 역시 다르구나. 발표가 문제가 아니라 청중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오 벤처기업 큐리언트가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자회사인 LDC(Lead Discovery Center)와 프로테아좀(Proteasome) 저해 기술을 활용한 신약개발 조인트벤처(JV) 설립을 합의했다고 오후 3시부터 열린 설명회에서 밝혔다. JV는 LDC가 위치한 도르트문트에 설립되며, 현지 연구소와 협력해 신약을 개발할 예정이다. 후버 교수도 JV의 공동창업자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프로테아좀은 암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단백질 분해효소 복합체다. 후버 교수는 그날 오후 강연을 통해 프로테아좀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하면 어떻게 항암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후버 교수가 주목하는 프로테아좀 약물 타깃 구조는 마치 케이지처럼 기질이 떨어지고 붙으면서 물리적으로 프로테아좀이 열리거나 닫힐 수 있다.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는 "프로테아좀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연구기관과 구조를 잘 아는 후버 교수와 후속 연구도 함께 한다"고 밝혔다.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높은 특이성을 가진 프로테아좀 저해제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같이 협력하는 공동작업뿐이라고 강조했다.

저녁도 함께하면 좋았겠지만 다른 약속이 미리 잡혀 있었기에 198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후버 교수와의 하루 데이트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 오후 5시에 끝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을 다시 깨달었다. 노벨상을 받았건 안 받았건 어떤 열정을 갖고 행동하느냐가 전부였다. 나도 후버 교수처럼 바이크(bike)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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