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편, 지금 안하면 10년간 기회 없다”

“의사들에게 정보 전면 공개하고 충분한 논의 과정 거쳐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지난 2년간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서 논의한 결과물인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안)’이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협의체 일부 구성원은 전례없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구체화했다는 데서 이제는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등 의료계는 의사의 미래가 걸린 사안인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란 의료기관 종별로 기능을 명확히 하는 것을 말한다. 
 
의협 비대위는 23일 전체회의에서 의료전달체계 관련 논의가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와 관련이 있다며 비대위로 위임할 것을 결의했다. 의협 집행부가 계속 해당 사안을 추진할 경우 추무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사유라고 강경하게 나섰다. 하지만 3800여개의 비급여의 급여화를 추진하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시행 전에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꼭 필요하다면 지금 의료계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10년 만에 찾아온 개편 기회, 놓치면 안돼”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일원이자 문재인 케어 설계자로 알려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가 최종 권고문을 확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지금 하지 못하면 10년 안에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 환자가 5년 이내에 현재의 3분의 2로 줄어들 수 있다”라며 “개원 의사들은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현재보다 더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권고문에 대해 내과계는 찬성했고 외과계도 일부 수정해달라는 의견을 반영한 상태”라며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20조원이 남아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며 의료계의 동참을 촉구했다.
 
김 교수는 “의료계의 행동이 매우 개탄스럽다. 의료전달체계가 문재인 케어와 연계가 있으면 의협 비대위가 협의체 구성원으로 참여하면 되지만 논의 자체를 중단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며 “지난 2년간 협의체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정확히 숙지하고 여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를 하려면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해왔다”라며 “무작정 권고문 확정 기한을 연기할 수 없는 만큼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권고문 확정을 원하고 있다.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전문지기자협의회와의 인터뷰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서 병상, 의료장비 등의 기준과 관리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라며 “병상기준 조정 문제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의협 집행부는 추무진 회장이 직접 나서서 21일과 22일 외과계와 내과계 간담회를 통해 개원의 단체와 학회 회장 설득에 나섰다. 29일 오전 7시에는 의협 산하단체를 초청해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권고문 논의를 위한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의협 집행부는 조현호 의무이사와 임익강 보험이사가 협의체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종별 중심에서 기능별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는 관련 논의가 한동안 중단됐다가 올해 8월 9일 문재인 케어가 발표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를 줄이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면 의료비 부담이 줄어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이 심해지고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9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연말까지 협의체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권고문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나온 구체적인 권고문에 따르면 기존의 의료기관 종별 중심에서 기능별로 개편한다. 내과계 의원은 만성질환관리를 중심으로 일차진료기관이라는 명칭으로 1차 의료기관으로 규정했다. 이들에는 만성질환관리와 심층진료에 대한 수가 가산을 한다. 또 외과계 의원과 단일 진료과목 병원은 전문진료기관으로 두고 2차 의료기관으로 규정했다. 이들에는 환자 안전 등 질 관리를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상급종합병원 등은 3차 의료기관으로 두고 경증 환자에 대해서는 수가 감산을 하고 중증 환자에는 수가 가산을 하기로 했다.
 
의협 집행부는 12월 22일까지 권고문을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내년 1월 3일 협의체 소위원회까지 잠정 연장하기로 했다. 1월 12일 협의체 본희의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청회 열되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 필요
 
의사들이 권고문 확정 기한이 임박해서 불만이 급증한 이유를 보면 그동안 의협이 의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소통을 하지 못해서라는 지적이 많다. 외과계 의사회 관계자는 “내과는 만성질환 관리를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하지만 외과계에서 논의가 이뤄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비뇨기과의사회 어홍선 명예회장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의료계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일”이라며 “협의체가 2년동안 지속됐지만 외과계 의사들에게 실제로 알려진 지는 2~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 회장은 “외과계에도 만성질환 관리 수가 같은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나와야 하고 이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라며 “외과계가 2차 의료기관으로 분류된 것에 대해서도 개원의 단체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의료공급자에게만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더 중요한 것은 환자들에게 상급종합병원 선택을 제한하고 상급종합병원에서 최대 1년치 약을 환자에게 처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 비대위 이동욱 대변인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의사들의 존속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며 “집행부나 회장단 몇 사람의 의견으로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고 분명히 했다. 
 
의협 집행부는 그동안 각 개원의 단체로 꾸준히 공문을 보내 의견을 수렴했지만 확정되기 직전에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2년간 논의하면서 개원의 단체 회장이 각 의사 회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빠졌다"라며 "이를 의협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 집행부든 비대위든 공청회를 한다면 가장 많은 회원이 참석해서 심도 깊은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의사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공개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협에서 토론을 하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성만 오가는 일도 많았다”라며 “이런 측면에서 의협이 의사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임솔 기자 ([email protected])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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