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컴퓨터 과학에서 파이프라인은 한 데이터 처리 단계의 출력이 다음 단계의 입력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연결된 구조를 가리킨다. 이렇게 연결된 데이터 처리 단계처럼 바이오-제약의 신약개발도 마치 물이 천천히 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연결된 것 같이 신약개발 프로세스를 파이프라인에 비유한다. 신약개발의 파이프라인의 이어진 관 하나 하나를 넘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지난 5월 1일에 배달된 릴리의 항암 파이프라인 변화를 보도한 '피어스바이오테크(FierceBiotech)' 기사를 읽으며 필자가 과제의 진행도 해보고 좋은 타깃으로 생각도해본 타깃들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좋으면서도 신약개발의 어려움을 다시 느꼈다.
특별히 이번에 정리된 두 과제는 PI3K/mTOR 이중 억제제인 LY3023414와 어레이 바이오파마(Array BioPharma)에서 가져온 CHK1 저해제인 '프렉사서팁(prexasertib)'이다. 두 과제는 2017년 여름 파이프라인 정리에서 7개의 생존자로 살아남은 과제였다.
7생존자의 명단에는 이미 그 당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발매 리뷰 중인 아베마시클립(abemaciclib, 상품명 버제니오)와 어느 제약사나 소유하고 싶어하는 PD-L1항체 등이 있었다. 릴리의 버제니오는 내분비요법 이후 진행된 호르몬수용체(HR) 양성, 인간상피세포증식인자수용체2(HER2) 음성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2017년 9월 말 발매 승인을 받았다. 그만큼 7생존자는 릴리의 판단으로는 발매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과제들이었다.
PI3K/mTOR 이중 억제제인 LY3023414는 시장이 큰 전립선암(CRPC)에서 엔잘루타마이드와 병용치료를 목표로 임상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립선암은 전 세계적으로 남성에서 발병하는 암 중 두 번째로 흔한 암종이며, 미국의 경우 남성에서 가장 흔한 암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식생활의 서구화와 인구의 노령화로 인해 전립선암의 발생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전립선암의 호르몬 억제 치료인 안드로겐 차단요법(ADT: androgen deprivation therapy)은 매우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환자에서 병이 진행돼 소위 거세 저항성 전이성 전립선암(CRPC: castration-resistant prostate cancer)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안드로겐 수용체-신호 억제제인 엔잘루타마이드(enzalutamide, 제품명 엑스탄디)를 이러한 상태의 CRPC 치료제로 사용한다. 엔잘루타미드가 전립선암이 전이되기 전에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PI3K/mTOR 타깃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암 치료의 중요한 약물 표적인 ‘엠토르’(mTOR)는 쉐링프라우(Schering-Plough)에서 2008년 한국으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필자가 PI로 진행하던 타깃이라 더 그렇다.
엠토르 단백질은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효소로, 이름 자체가 '포유류에 존재하는 암 치료제인 라파마이신(Rapamycin)의 표적(mammalian target of rapamycin)'이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라파마이신은 mTOR (특히 TORC1) 단백질에 결합해 항암효과를 나타내지만 라파마이신이 mTOR를 억제하는 정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2004년 사바티니(Sabatini) 교수 실험실에서 rictor(rapamycin-insensitive companion of mTOR)를 저널에 발표하면서 TORC1과 TORC2의 다른 점을 제시하자 마자 필자는 저해제를 얻기 위해 스크린을 만들었다. 특히 TORC2의 저해제가 항암제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됐다. mTOR가 카이네이즈 단독으로가 아니라 rictor, raptor(regulatory associated protein of mTOR)와 그리고 공통으로 GβL과 복합구조로 이뤄졌을 때 스크린이 TORC1과 TORC2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을 알았다. HeLa 세포에 TORC2유전자를 발현했을 때 rictor, GβL과 복합구조로 존재하는 것을 검증했을 때 엄청 기분이 좋았던 것도 기억된다. 2011년 당시 사노피의 김재은 박사와 만나 미국에서의 진행하던 과제를 이야기하다 두 사람이 똑같이 mTOR를 연구했던 것을 알고 박장대소한 것도 기억난다.
정리된 두 과제의 다른 하나는 백금 저항성 또는 불응성의 재발성 난소암을 대상으로 임상 2상 시험을 진행 중이던 프렉사서팁이다. 프렉사서팁이 2년전 럭키 세븐에 들어간 이유도 난소암의 다음 표준치료제(standard of care)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면역 항암제나 다른 항암제와 복합제 combi가 가능한 이유 때문이었다.
릴리는 2018년 5월 ARMO의 페길레이션을 통해 반감기를 늘린 지속형 인터루킨-10(PEGylated IL-10)인 'AM0100(pegilodecakin)'을 새로 도입했다. AM0010는 임상에서 단독으로 또 면역항암제와의 병용투여에서 항암효과를 입증하고 있기에 주목받고 있는 면역항암제 후보물질이다.
현재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는 진행성 췌장관세포암(PDAC, advanced 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의 경우 임상1b상에서 21명 환자에 AM0010와 FOLFOX를 병용투여했을 때 16%의 관해율(remission rate)을 나타냈다. PDAC가 예후가 안 좋은 암종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다. 또한 AM0010의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3상 결과는 2019~2020년까지 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Interleukin(IL)-10은 다양한 세포에서 생성되는 중요한 면역 조절 사이토카인(cytokine)이다. 그 중요한 기능은 염증 반응의 억제할 뿐만 아니라, T 세포, B 세포, 자연살해(natural killer) 세포, 항원 제시 세포, 비만세포(mast cell) 및 과립구(granulocyte) 등 여러 면역 세포의 증식과 분화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날의 칼로 여겨왔다. 일부 흑색종(melanoma)나 림포마에서는 IL-10 이 과다하게 발현되는 것이 관찰돼 그 결과 종양 발생이 촉진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건선(psoriasis) 등 type 1 사이토카인이 우세하게 작용하는 일부의 염증성 질환에서는 IL-10이 상대적으로 적은 농도로 관찰되며 이러한 현상이 병태생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IL-10을 발견하고 오랫동안 연구를 많이 진행한 DNAX가 쉐링프라우의 자회사였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ARMO의 페길레이션을 통해 반감기를 늘린 지속형 인터루킨-10을 접하면서 창립 멤버들이 DNAX 출신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도 HyFc에 인터루킨-10을 붙이면 지속형 인터루킨-10이 되어 경쟁력 있는 항암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오래 전에 주장했다.
릴리의 최근 항암 파이프라인 변화를 지켜보면서 창출된 파이프라인 지속의 어려움을 다시 실감한다. 또한 항암제는 단독 요법보다는 병용치료에 얼마나 유용한지가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단독으로 그 대상 암의 ‘standard of care’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을 미리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물이 관을 잘 흐르게 옆에서 돕는 것이 연구자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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