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시끄럽다.
사건 직후 기자 주위 반응을 보니, 피의자의 정신과적 기왕력을 짐작했던 의사가 제법 많은 것 같다.
뭔가 한마디는 해야겠는데 섣불리 왈가왈부하진 못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컨설팅'을 기다리는 의사도 있었다.
나중에 피의자의 기왕력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다들 역시나 하는 반응이다.
피의자의 조현병 입원 기록
2008년 발병, 1개월 입원
2010년 : 6개월 입원
2013년 : 6개월 간 입원
2015년 8월 ~ 2016년 1월까지 입원
2016년 3월 가출 후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짐.
피의자는 2008년경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처음 진단받고 약 4번에 걸쳐, 19개월 동안 입원을 했다.
가장 최근 퇴원했던 게 올해 1월인데, 그는 2개월 후에 가출해 그때부터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의 성격이 '여성혐오'인지, 그냥 '묻지마살인'인지 갑론을박이 뜨겁지만, 의학적 관점에선 명확한 사건 발생 이유 하나가 보인다.
바로 환자의 자의적인 약물 복용 중지다.
약을 잘 먹는 것
환자가 처방 받은 약을 의사 지시대로 잘 따라 복용하는 정도를 '복약순응도'라고 한다.
보통 환자의 복약순응도가 떨어지는 건, 환자 개인의 성격 탓도 있고 의사가 교육을 소홀해서일 수도 있으며, 그 외에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유는 일반적인 환자에만 해당하는 얘기로, 소아청소년과 환자나 치매 환자들과 더불어 정신과 환자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들 환자는 일반적인 성인이 할 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이 어려워, 보호자가 필요하다.
그만큼 정신과 환자들의 복약순응도에 있어선, 다른 이유보다 보호자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런 '예외'는 법에서도 인정한다.
형법 제10조엔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약물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정신과 환자들은 형사사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최근 개정된 정신보건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제시하던 '자발적 입원율: 24.1%'라는 숫자 역시, 단순히 그 비율의 크기만을 따질 게 아니라, 이런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정 정신보건법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제도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최근 국회를 통과한 법안.
강제입원 요건과 절차를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현재는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필요성' 또는 '자해, 타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입원시킬 수 있지만. 앞으로는 두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입원시킬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일치된 소견'을 피력해야만 입원이 가능하다.
'동네 바보 형'의 슬픈 전설
지금 30대 이상 세대들은 꼬마들에게 무시당하던 '동네 바보 형'에 대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당시엔 부모가 자식 한명 한명에 많은 신경을 써줄 수도 없었고, 사회 역시 그런 정신 질환 의심자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어 그렇게 방치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그런 동네 바보형은 줄었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변하지 않았고 그들을 위한 환경도 여전히 열악하다.
조현병은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1%의 유병률을 보여 약 50만 정도의 환자가 추정되지만, 실제 국내에서 진료받는 환자는 10만명에 불과하다.
사회에서 감지하지 못한 어딘가에서 병을 키워가는 조현병 환자가 많다.
많은 논란과 에너지
이번 사건에 많은 사회적 에너지가 모이고 있다.
다양한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베'나 '메갈리안'과 같은 이성 혐오 사이트까지 가세해 다른 사회적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전문가 의견은 대체로 다양하다.
범죄 전문가들은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는 의견이 엇갈린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으로 단정해선 안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질환군의 환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사 집단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아닌 기자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만약 이번 사건 피의자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아 약을 제대로 먹었다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그가 왜 가출을 했고, 몇 개월째 가출한 정신질환자가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는지?
피의자가 어쩌다가 사회에 던져져 치료를 자의적으로 끊게 됐는지, 사람들은 여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하나의 사례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담론을 찾고자 했다면, 이런 문제도 같이 고민했어야 한다.
만약 피의자의 정신 상태가 '약물 복용이 꼭 필요했던 상황'으로 밝혀질 경우, 그는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
법적으론 '가해자 없는 피해자'를 만든 셈이지만,
가해자가 정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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