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한림원 의대정원정책 연구...무작정 의사수 증원 아닌 1차의료 강화, 진료과별 증원, 인력 수급 추계 등 제시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과대학 정원 정책에 대한 의료계 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고령화 상황에 따라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대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부터 단순한 인력의 양적 조절 문제에서 탈피해 보건의료인력계획의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여러 의견에 제시된 것이다.
특히 향후 의사 인력 추계가 커뮤니티케어 확대 상황을 고려해야 하며 1차의료 강화와 지역 편차 개선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대안도 강조됐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8일 오후 고려대 하나스퀘어에서 '의대정원정책에 대한 심층적 분석 연구'를 주제로 제21회 보건의료포럼을 진행했다.
의학한림원 정책개발위원회는 최근 의대정원 정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의사의 양성은 10년 이상의 긴 세월이 필요하므로 정부와 의료계가 긴밀하게 협력해 의사수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시행함으로써 추계자료를 만들고 이에 근거해 장기적인 수급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연구 책임을 맡은 안형식 의학한림원 정책개발위원장은 이날 포럼에서 "연구 결론이 특정 집단이나 기관의 이익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지표와 방법론에 따라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도록 결론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의사수 정원 문제 뿐만 아니라 의료인력과 관련된 여러가지 요소들도 함께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사도 적은데 외래진료는 OECD 2.5배…이대론 의사 부담 한계 초과
의사 수 증원을 요구하는 찬성 측은 우리나라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에 미달한다는 논리를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발제에 나선 국립암센터 강은교 가정의학과 교수도 어느 정도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고령화에 따라 의사들의 외래진료 부담이 늘어나고 지역간 편차도 극심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국 시도 중 의사 수(평균 2.5명)가 OECD 평균인 인구 1000명당 의사수 3.7명 이상인 곳은 없다. 대부분 시도가 1명~1.5명 사이이며 가장 부족한 세종시는 0.8명, 가장 많은 서울시도 3명으로 OECD 평균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강은교 교수는 "의사 수 부족에 더해 더 큰 문제는 의사가 부족한 지역이 고령인구 비중도가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라며 "의사의 상대적 부족과 지역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OECD 현 기준인 2.5명을 기준으로 고령화지수를 고려해도 2.5명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대다수"라며 "특히 경상북도와 세종시 등은 1000명당 의사 수가 1명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간 편차를 고려한 의사인력 통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의사수가 OECD 평균비해 적지만 국민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는 14.7회로 OECD 평균인 5.9회에 비해 2.5배 이상 많다.
또한 국내 입원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수는 19.1회로 OECD 평균(8.3일)의 2.3배 이상이다. 강 교수는 이 같은 수치를 기반으로 향후 고령화에 따라 국내 의사들의 외래 부담이 더 늘어날 것으로 봤다.
강 교수는 "연간 14.7회의 외래진료를 2.5명의 의사가 진행한다면 OECD 대비 의사 당 3.7배의 부담이 가게 되는 셈"이라며 "향후 고령화에 따라 외래 건수와 입원일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진의 부담은 점점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의료의 질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추계, 1차의료‧커뮤니티케어 등 고려…진료과 별도 증원 계획도
다만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기보단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1차의료 강화와 진료과 별 별도 증원 계획, 커뮤니티케어 확장에 따른 의사인력 수급 추계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강은교 교수는 "OECD 평균 주치의(GP) 비율은 23%인 것에 비해 한국은 5.9%로 일반의 수가 부족하다"며 "1차 의료가 문지기로서의 기능을 제데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1차 의료가 약하면 취약계층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지고 전문적인 관리가 어렵다. 1차 의료 강화와 의료 불균형 악화를 개선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커뮤니티케어의 확장에 따라 주치의 역할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다양한 모델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수급추계가 수행돼야 한다"먀 "한국도 외국 처럼 커뮤니티케어의 확장에 따른 별도 의사인력 추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일본 후생노동성은 미달되는 과에 대해선 지원을 추가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한국도 의사인력 수급 추계와 별개로 진료과 별 고려가 수반돼야 한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같은 경우 2023년에도 충분한 전문의 증가가 예상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과에 대한 추가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 인력 추계가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보라매병원 장원모 공공의학과 교수는 “정확한 의사 인력 예측을 위해선 시대적 이슈에 반응적인 추계가 필요하다. 일례로 저출산과 고령화, 지방 소멸, 불평등, 신종감염병 유행과 인공지능(AI), 디지털헬스 등 기술의 변화에 따른 수요 예측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의대 권복규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AI가 의료에 적용되면서 진단 업무의 자동화가 이뤄지면 의료 공급의 확대가 이뤄지고 의사 업무 효율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원격진료가 제도화 되면 대령의 환자 진료가 가능해져 비대면진료 기술이 AI와 결합되면 새로운 진료 양상이 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진료보조인력인 PA 등 허용에 따라 의사의 업무 효율화나 의료비용의 절감이 이뤄질 수도 있다. 또한 폭증하는 의료비 절감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험 적용 일수나 보험 적용 대상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부분이 의사 인력 추계에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 수 조정이 문제 아냐…장기적 인력계획 위한 거버넌스 구축 필요
반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기적인 보건의료인력계획이 세워져야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포함된 의료인력 추계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소 서경화 전 책임연구원은 "오랜 기간 동안 의사 수급문제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고 결론도 나지 않고 있다"며 "의사인력 문제는 유지 혹은 축소로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그 해결책이 항상 의대신설,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귀결된다"고 비판했다.
서 전 책임연구원은 "보건인적자원 논의는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목표와 우선순위를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나 보건의료발전계획은 단 한 차례도 수립된 적이 없다"며 "이외에도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도 아직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순한 양적 문제에서 탈피해서 보건의료인력 계획의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선 의료인력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보건의료인력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선 재정, 경제 정책, 고용관행, 변화에 대한 저항 등 여러 요소가 연계돼 영향을 준다"며 "반드시 의사 인력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기준 국가 차원의 의사인력 거버넌스 조직을 비교해보면 미국은 보건의료인력분석연구센터가 전담조직을 맡아 21명의 전문가들이 데이터 수집과 분석, 관련 연구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네덜란드보건의료서비스연구소가 주축이 돼 200명의 인력이 이해관계자 참여와 책임공유, 의사결정단계의 투명성 개선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버넌스 구축 후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서 전 책임연구원은 "우선은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거버넌스 차원과 하위요소 선정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그 뒤 거버넌스 구축에 따른 법제도와 역할 재정비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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