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법이 국회 본회의를 가볍게 통과해도 대화와 협상만 하겠다는 의협, 이대로는 안돼

[칼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

CCTV설치법이 찬성 135인, 반대 24인, 기권 24인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자료=김재연 회장 캡처 

[메디게이트뉴스] 8월 31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 국회 본회 통과 소식을 접하고 당혹감을 넘어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의 모멸감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의료계 지인은 전화로 "회장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너무 화나는데 더 화나는 것은 너무 조용하다는 것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만약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 시절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8월 12일 가진 '회장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41대 의협 집행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활발하게 정치권이나 각계 각층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두루 만나 의료문제를 이슈화하는데 힘썼고, 출범 이후에도 대외 행보를 변함없이 이어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보건의료 문제를 협회와 의료계 힘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으며, 정치권과 각계각층, 나아가 우리 국민들에게 의료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CTV법안을 표결처리하는 이날 오후 6시 59분쯤, 반대 토론 없이 즉결심판하듯 표결하는 상황에서 이필수 회장 집행부 일행은 국회가 아닌 질병관리청을 방문해 코로나19 방역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의료계 제안사항들을 전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과연 의협 회원들이 국회 본회의 표결 보다 질병청 방문을 시급한 약속이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의협 집행부가 대화와 협상을 외칠동안 전 최대집 회장 집행부부터 문제제기된 의료현안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 상시투쟁체 없는 협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치욕의 의료정책 하나가 통과됐고, 이제는 다른 것도 통과될 일만 남은 아닐지 우려스러울 뿐이다.

정부여당은 위헌 논란이 있어도, 헌법의 근본 가치를 짓밟는 법안 있어도, 의협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도 CCTV법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일방처리했다. 의협 집행부가 성과라고 밝힌 협조를 통해 CCTV 투표결과는 재적 183인에 찬성 135인(74%), 반대 24인(13%),  기권 24인(13%)으로 큰 이견없이 통과됐다.

의협은 180석 차지로 ‘입법 독주’를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신차려야 한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앞으로 남은 현 정권 임기 8개월 중에 숙원법안들을 죄다 통과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일이다. 

CCTV법 다음에 산적한 법안도 많다. 의사면허 박탈법이 2월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다음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의료인이 강력범죄나 성폭력 범죄 등 의료법 이외 법률을 위반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으로, 민주당은 9월 본회의 통과를 예고하고 있다. 

간호 단독법 제정안 입법 추진은 민주당 소속 의원이자 소관 법률 상임위원장인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이 지난 3월 25일 대표발의했다.  

비급여 진료비 고지 의무화 확대 또한 현안이다. 병·의원이 제출한 비급여 진료비 자료는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오는 9월  29일부터 공개할 계획이다.병원급 의료기관은 96.2%, 의원급은 87%가 비급여 진료비 자료 제출을 마쳤다. 하지만 정부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의료기관을 상대로 과태료 처분을 하겠다는데 대해 의협은 대책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최근 여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잇따라 의대 신설 공약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낙연 대선 경선 국립 공주대에 의대를 신설하겠다고 밝히고 정세균 후보는 남원 공공의대 설립은 서남대 폐교 이후 대안으로 정부와 지자체간 이미 합의됐던 건이라며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의협은 9월 13일까지 간호법 제정 반대를 위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선다고 한다. 하지만 의협은 1인 시위만으로는 정부여당을 막을수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시도의사회장협의회 내부에서 상시투쟁체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제기됐다. 상시투쟁체 구성이 당장 길거리 투쟁에 나서자는 의미는 아니지만, 의협은 언제든 대정부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투쟁이 빠진 채 대화와 협상만 해서는 거대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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