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딴나라 이야기] 일본

'해금'되는 의사법 제20조



원격의료는 '의사-환자 간 접근성 향상'이라는 개원의 평생 고민을 단번에 해결했다.
 
아무리 번화한 사거리의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의원도 환자의 귀차니즘을 이기진 못한다.
 
의사로선 원격의료 덕에 환자 만나는 채널을 하나 더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새로운 기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바로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대체적 기술의 의학적 동등성 확보
의료계는 2D(원격진료)로 환자를 보는 기술이 3D(대면진료)로 볼 때와 의학적으로 결과가 동등해야 하고, 그 결과를 증명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2D로 얻는 환자의 정보량은 3D보단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 의료 수가
원격의료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 의도가 불순하다고 염려한다. 일부 의료인은 원격의료 도입이 환자 편의성 증대가 아닌 의료비 삭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당초 '밀어붙이는 정부'와 '저지하는 의사 단체'라는 프레임이 먼저 연상되면, 국내 원격의료를 '드라이'하게 보기는 글러 먹은 거다.
 
에너지 넘치는 논쟁의 피로감은 뒤로하고, 해외로 눈을 잠깐 돌려 볼까 한다.
 
'다른 집' 구경하면서 힌트 좀 얻자는 생각이다.
 
 
이 기획은 원격의료가 좋다는 칭찬도 아니고, 나쁘다는 비판 역시 아니다.
 
단지 "외국은 이렇다"란 사실의 정리가 대부분이고, 독자 역시 기사를 읽고 "저 나라는 저러네"라고 반응하면 기자의 미션은 완료한 셈이다.
 
뜻하지 않게 그 이상의 것이 얻어걸리면 더욱 좋은 거고.

 
첫 나라는 주요 선진국 중 의료 환경이 가장 보수적이고, 우리와 가장 닮은 구석이 있는 일본이다.

그동안 일본의 원격의료는 (원격의료에 부정적인) 국내 의료 단체가 가장 많이 인용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재밌는 건, 같은 기간 국내 언론은 일본의 원격의료가 마치 활성화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던 일본 원격의료는 작년 8월이 전환점이었다. 
 

의미가 확장한 '일본 의사법 제20조'
 
일본 원격의료에 관한 자료를 찾다 보면 관련법 하나가 끊임없이 언급된다.
 
바로 일본 의사법 제20조다.
 
"의사는 스스로 진찰하지 않고 치료하거나 진단서 또는 처방전을 교부하고, 스스로 출산에 입회하지 않고 출생증명서 혹은 사산 증서를 교부하거나, 스스로 검안을 하지 않고 검안서를 교부해서는 안된다."
 
내용인즉슨, 직접 진찰하지 않으면 진료로 인정받을 생각 말라는 얘기다.
 
 

후생노동성(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


하지만 1997년 후생노동성(한국의 보건복지부 역할을 맡는 기관)은 낙도나 산간벽지 주민의 취약한 의료 접근성 문제를 깨닫고, 전향적인 '통지'(일종의 '고시')를 배포해 원격의료의 기본 가이드를 정리했다.
 
후생노동성은 당시 일본 의사법 20조를 근거로 "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이다"라고 전제했지만, "원격 진료는 (어디까지나) 직접 대면 진료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한다"는 소극적 가능성을 열어줬다.
 
수정 없이 기존 법규의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정부는 '보완'이라는 단어가 주는 애매함을 깨달았는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예시를 '통지'에 첨부했다.
 


당시 일본의 DtoP 원격의료 대상과 내용 <출처 : 주요국의 원격의료 추진 현황과 시사점, 김대중>



하지만 많은 의사는 이런 예를 '화이트 리스트'로 받아들였다.
 
직접 제시한 '예 이외에는 전부 금지'라는 소극적 해석을 한 것이다.
 
 
2011년 후생노동성은 관련 법규를 조금 더 확장해 각 현에 통지를 내린다.
 
규제 완화의 제스쳐였다.
 
통지에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덧붙여졌다.
 
"직접적인 대면 진료와 동등하지 않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정도로 환자 심신에 관해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경우엔 원격 진료를 해도 의사법 제20조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
 

정부가 내민 '제스쳐'에도, 의료 현장에선 원격의료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실제 원격의료 건수 역시, 이전부터 활발했던 DtoD(Doctor to Doctor)에 반해 DtoP(Doctor to Patient)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관련 학회가 새로운 통지를 기반으로 배포한 원격의료 가이드라인도 하나같이 보수적이었다.
 

 
원격의료, '해금'
 
일본 의료계가 본격적으로 반응한 건 작년 8월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보낸 '통지'는 이전보다 훨씬 파격적이었다.

이 통지는 정부가 발간한 '경제 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 2015'라는 계획의 후속 조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규제 개혁 내용에 '의료 자원을 효과적·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원격 의료 추진'이라는 항목을 명시했다. 

후생노동성은 새로운 메시지를 통해, 이전에 언급한 원격의료의 기본 개념과 사례를 '좁게' 해석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통지'엔 세 가지 구체적인 지시가 담겨 있었다.
 
1. 원격 진료 지역을 낙도 및 산간벽지 환자에 제한할 필요가 없다.
2. 별표 표시(재택 당뇨병 환자 등 9종류의 환자군) 이외의 질환도 원격 진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3. 대면 진료는 원격 진료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언론은 '해금'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의료계는 관련 산업체의 후원으로 원격의료에 관한 각종 심포지엄을 열기 시작했고,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 업체는 참여 병원을 늘려가면서 런칭 타임을 조율한다.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주최한 원격의료 심포지엄
 
 
통지 직후 원격의료 확산을 확신하지 않는 시각도 있었다.
 
원격의료에 대한 보험 적용 법규가 정비되지 않고, 병원 입장에서 도입에 대한 동기부여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올해 4월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원격의료 서비스를 주목했다.
 
 

본격적인 원격의료 시작 : '포켓 닥터'
 
올해 4월, 일본의 'MRT'라는 업체는 원격 관리 기술 업체인 '옵팀(OPTiM)'과 합작해 '포켓 닥터'를 런칭한다.
 
포켓 닥터는 휴대전화나 태블릿 등의 모바일 디바이스를 활용한 원격의료 서비스다.
 
의사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입을 올리고, 환자는 의료를 '케주얼(회사 표현에 의하면)'하게 이용한다.



포켓닥터의 홈페이지 화면
 
 
MRT사는 'Gaikin'과 '넷의국'과 같이 의사·의료 기관의 정보·관리를 서비스하던 업체고, 옵팀은 건설, 농업, 화장품 등의 산업과 IT를 결합한 IoT 전문 회사다.
 
포켓닥터는 '옵팀'이 원격 분야에서 보유하던 원천 기술을 활용할 예정인데, '빨간색 펜 기능'과 '삿대질 기능'으로 구현된다.
 
포켓 닥터가 제공하는 세 가지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주치의 진료 : 초진을 받은 의료기관과 원격으로 재진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보험 적용 가능.
예약 상담 : 전국의 전문의와 미리 약속한 시각에 원격으로 건강 상담. 5분에 1500엔부터 시작.
지금 상담 : 365일 24시간 내내 전국 어디서든 의사와 즉시 상담할 수 있는 원격 의료 서비스. 월 500엔.
 
 
 
 
한 일본 매체에 따르면, 원격 진료 때 의사는 의료 기관에 소속할 의무가 없어, 육아를 겸하는 의사에게 포켓 닥터는 매우 유용할 거라고.
 
포켓닥터는 현재 1,340개(일본 의료 시설의 1%)인 참여 의료기관을 2019년 3월까지 10,000개(일본 의료 시설의 10%)로 확장할 계획이다.
 
회사는 참여 기관 확대를 위해 '한시적인' 플랫폼 무료 제공 의사를 밝혀, 수익 모델을 암시했다.
 
궁극적으로 포켓 닥터는 환자 정보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저장한 후, 자동으로 분석해 질환을 조기 발견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완성하고자 한다. 



포켓닥터의 향후 계획
 
 

기타 일본 업체들 : 바이탈 코넥트, 포트 메디컬, 앰큐브
 
'바이탈 코넥트'는 수면 때 심장과 같은 생체 징후나 신체 움직임 등을 종합하여 패턴을 파악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연구 중이다.
 
이 회사는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우울증 같은 특정한 정신 질환과 패턴의 유의미한 매칭을 기대하고 있다.

런칭을 앞둔 또 하나의 원격의료 서비스, '포트 메디컬'은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진단과 처방뿐 아니라, 의약품 배송까지 책임진다.


 엠큐브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사진 출처 : //www.nikkei.com>


클라우드 기반의 웹/화상 회의 플랫폼 업체 '브이큐브'와 의료인 버티컬 포털 'M3'가 합작한 '앰큐브'는 정신 건강 영역에서 의사와 환자를 직접 연결하는 통신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일본 원격의료에선 유독 정신 건강 연구가 눈에 띄는데, 이는 사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작년 12월부터 일본내 모든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스트레스 검사를 받아야만 한다.


일본 원격의료에 대한 정리
 
-일본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물꼬가 트인 건 작년 8월이지만, DtoD의 경우 40년, DtoP의 경우 2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기간에 일본 정부는 관련법 (규정이 아닌) 해석을 소극적으로 변경하면서 원격의료를 제어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래서 (국내와는 반대로) 의료인이 일본원격의료학회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원격의료 도입을 요구했다.
 
-일부 매체에서 밝힌 인터뷰를 보면, 일본 의사들은 이 기술을 새로운 진료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아직 원격의료에 대한 일본 의사의 저항이 크게 이슈화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은 일본 정부가 자기 역할을 법률 해석으로 한정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일본 정부는 원격의료를 시장에 맡겼으며, 본격적인 원격진료 역시 민간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의료소비자와 의료공급자는 필요에 따라 그것을 활용한다.
 
-일본 원격의료는 의료공급자의 공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 육아에 상대적으로 더 집중하는 여성 의사는 가정에서 진료를 병행할 수 있다.
 
-원격의료는 이미 일본에서 활성화한 왕진 서비스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포켓 닥터를 비롯한 원격의료의 의학적 동등성 연구나 축적된 데이터 연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플랫폼에 대한 의학적 인정보다는, 자율성을 주고 의학적 책임을 지게 하는 일본의 비급여 의료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포켓 닥터의 '주치의 진료'처럼 보험급여까지 하는 의료 서비스에 동등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원격의료 #일본 #포켓닥터 #포트메디컬 #메디게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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