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불어도 뿌리째 흔들리는 의협, 의사면허 강탈법·전문간호사법 앞두고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칼럼] 박상준 의협 대의원회 부의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료계 역사에 길이 오점을 남긴 악법 제정에 의료계가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다. 불법 대리 수술을 막고 의료분쟁 때 참고자료 활용을 위한다는 개정안은에는 의료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압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번 법안 의결에 대한의사협회와 회원들은 분노하는 동시에 망연자실해지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막기 위해 의협 집행부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국회를 설득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의협 집행부의 허탈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법안의 통과에 따른 회원들의 분노는 거대한 파도처럼 높아지고 있다.

의협 대의원회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며 총력 저지를 주문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법안 저지가 좌초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회원들의 면허를 위협하고 있는 ‘전문간호사법 자격인증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과 소위 ‘의사 면허 강탈법안’ 등 위협적인 현안이 다가오고 있다. 

CCTV 법안이 허무하게 통과하자 회원들의 분노와 불안감이 동시에 커지면서 의협 존재 이유를 지적하는 회원들이 늘고 있다. 회원들 일각에서 집행부가 지나치게 국회 설득과 대화에 의존해 높아진 회원의 분노 게이지를 활용하지 못한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족한 대국민 홍보 부족으로 수술실 CCTV 설치가 가진 위험성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국회 설득에 매달려 실기함으로써 천추의 한이 될 법안이 통과했다. 이는 외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수한 수술전문가 배출 맥이 끊겨 국가 의료시스템의 불균형과 퇴행을 초래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전가될 것이다.

회원들에게 큰 피해가 예상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회원에게 실망을 안긴 점에 대해 의협 집행부는 통렬하게 반성하고, 다가오는 현안에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처리할 동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 소재를 가리고 시시비비를 논하기에는 상황이 엄중하고 다가올 악법에 대처할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하다. 의협 집행부가 법안 가결에 따른 후속 대응책을 내놓고 국면을 조기에 수습할 전면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수술실 CCTV 대화와 협상에 무게를 두고 진행한 의협 집행부의 회무 운영 방향이 고비에 맞닥뜨렸다는 점에서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대화와 협상이라는 회무 방향성에 투쟁을 더해 보완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대화와 투쟁의 균형과 힘을 바탕으로 한 협상 전략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투쟁을 전담할 특별기구의 설치에 관해 적극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현안에 대응할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 목소리가 등장하고, 이를 빌미로 어려운 시국에 임시총회 개최 목소리가 번지면 총회 개최 필요성 유무와 무관하게 집행부가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면피용이 아닌 실질적으로 권한을 부여한 투쟁기구 구성 계획을 만들어 시도의사회장단 회의와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에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안이 만들어져 대의원회가 보증하는 형태가 되도록 해야 실행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코로나 시국이 위중해 회원들이 참여하는 궐기대회 개최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시도의사회장단과 운영위원회 및 산하단체장이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개최해 집행부의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형태의 모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그간의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 새로운 국면 전환에 따른 행동계획에 대한 협조를 얻어야 한다.

의협 홍보위원회도 법안이 가진 문제를 보다 세심하게 분석하고 지속해서 대국민 홍보와 회원들의 분노를 모으는 역할에 매진해야 한다. 문제를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도, 해결하기도 어려운 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의협 집행부가 일련의 노력과 회무 방향성 전환을 통해 협회의 위상을 회복하고 회원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의협 집행부는 두려움을 버리고 회원의 권익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망설임이나 추진에 주춤거리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대의원회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포함한 정관이 부여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회원 권익 보호에 직접 나서야 한다.

바람만 불어도 뿌리째 흔들리는 의협에 대한 회원들의 신뢰를 어떻게 다시 얻을지에 관한 고민과 투쟁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외부에서 불어 닥친 거친 바람을 내부의 강한 결속으로 굳건하게 버텨야 한다. 이제는 대화와 협상만으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상 투쟁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투쟁이 ‘즉시 파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을 설득하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다.

참고 인내하고 정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이제 의협과 회원들은 당당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자해와 자살이 목적이 아닌, 생존과 성장을 위한 의료 주체로서 미래 대한민국 의료 발전을 저해하는 지속적인 악법의 탄생과 제안을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

비상한 각오로 회원의 총의를 모으고 흩어진 투쟁의 기운을 한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밟으면 밟히고, 때리면 맞고 도망치는 어리석은 행동은 이제 멈춰야 한다. 의사의 권익은 의사 스스로 지켜야 한다. 사후약방문이라 해도 더 늦기 전에 회무추진 방향을 전환하고 투쟁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바람은 언제든지 다시 불어닥칠 것이다. 스스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지나가도록 의협과 관련한 조직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 분노의 강처럼 흐르는 회원의 눈물을 멎게 하고 통곡의 목소리가 의협에서 사라지도록 협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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