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의 연명의료결정법은 '불가능'

응급환자는 연명의료결정법 적용 배제한다는 명확한 법 조항 있어야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응급환자의 경우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이 배제된다는 확실한 명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응급실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이 가진 한계점을 명확히 해 진료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응급의학과 김순용 전문의(메디플렉스 세종병원)는 지난달 20일 열린 '2018 응급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응급실과 연명의료결정법-현장에서 체감하는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 및 방향'에 대해 발표하며, 이와 같이 밝혔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 치료 효과 없이 환자의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를 환자 본인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법인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고시하는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유보) 중단하는 결정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의 환자가 대상이다.
 
김순용 전문의는 이날 발표에서 응급환자에 대한 연명의료결정법 관련 내용을 법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문의는 "만약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 더 이상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판단 하에 중단했으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환자나 환자가족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한 내용의 유권해석을 지난 2월 5일 내렸다. 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절차를 규정한 법이기 때문에,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이 되지 않은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는 이 법에 따른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며 "다만 의료법 및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적합한지 여부는 개별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전문의는 "그러나 복지부 법령해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응급(실) 환자에게는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이 배제된다고 법에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의료법이나 응급의료법에도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사법부를 통한 확실한 유권해석을 통해 진료 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의사 1명의 판단만 받은 경우 이 법을 적용하지 않으며, 이법에 따른 모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기존의 법과 판례대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명시해야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 전문의는 응급실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을 실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유권해석처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이 되지 않은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판단되면 연명의료결정법을 이행해야 하는데, 짧은 시간 내에 실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임종기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이미 자신이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거나,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환자 본인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라면, 충분한 기간 동안 환자의 연명의료중단등 환자의 의사에 대해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과 담당의사를 포함한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응급실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없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의사2명과 가족전원의 동의, 관련 서류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촉각을 다투는 응급실과는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 김 전문의의 설명이다.
 
김 전문의는 "만약 요양병원에서 심정지로 새벽 2시에 응급실을 내원하고, 심폐소생술 후 심박재개가 왔다면 각 의료기관 응급실마다의 상황은 다를 것"이라며 "현재의 연명의료결정법 형태로는 응급실을 끌어안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전문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을 제외한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에서는 실시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현재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대부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고사하고,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을 하는 비율도 낮은 편이다. 게다가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이행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원 내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
 
김 전문의는 "윤리위원회를 둔 병원의 현황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이 95%, 종합병원 23%, 병원급 0.3%, 요양병원 0.9%수준에 불과하다"며 "서울지역 응급실 51개 중 윤리위원회를 갖춘 병원은 38곳"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허 교수는 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형병원은 연명의료결정법을 준수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중소병원은 불가능하다"며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윤리위원회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을 이행할 권한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사전연명의료계획서를 쓴 환자라도 임종을 맞이하는 중소·요양병원이 해당 서류를 전산으로 확인이 불가능해 연명의료결정법을 이행할 수 없다"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법 자체와 모순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허 교수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총 환자는 98명으로, 이 중 본인이 법정서식을 작성한 환자는 1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이 작성한 환자는 52명으로 훨씬 많았다.
 
또한 본인이 법정서식을 작성한 사례 중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는 2명에 불과했으며, 현장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가 1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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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희 기자 ([email protected])필요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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