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판단 아닌 '심평의학' 기준만 고수하던 정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왜 의사 판단에 맡기나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139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의사들에게 책임 떠넘기기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는 일원적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국민의료보험공단에 모으고, 병원은 환자를 진료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해서 받는다. 이 과정에서 진료가 적절했는지, 과하지는 않았는지를 심평원이 심사한다. 

이 심평원 기준을 두고 의사들은 자조적으로 ‘심평의학’이라는 말을 쓴다. 심평의학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한 경우도 많고, 교과서에서 벗어난 기준도 있으며,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기준을 벗어나면 진료비를 병원에 지급하지 않는데 이를 ‘삭감’이라고 하고, 진료비가 삭감되면 병원은 환자에게 공짜 치료를 해준 셈이 되므로 병원에 손해가 된다. 

그래서 의사들은 이 기준에 맞춰 한 번만 더 항암제를 쓰면 나을 것 같은 암환자에게 ‘보험 기준이 여기까지니 더 이상 약을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치료비 전액을 자비로라도 부담하겠다고 애원하는 환자에게 그것도 불법임을 설명하고 환자를 돌려보내야 한다. 이것이 ‘심평의학’이다.

그런데 2월 10일 설 연휴를 앞두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품목 허가를 결정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접종 기준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이 급하게 허가되는 과정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백신 허가 여부를 두고 국가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코로나19가 고령자에게 치명적인 만큼 허가를 안 해주자니 백신의 이득을 무시하기 어렵고, 허가를 해주자니 심각한 부작용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식약처는 “의사가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백신접종으로 인한 유익성을 판단해 결정하라”고 부분적 허가를 결정했다. 

그동안 정부는 임상 현장에서 환자 상태에 따른 의사의 자의적 판단이나 교과서에 나와 있는 기준마저 넘어선 우리나라만의 확고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삭감을 해왔다. 그런데 의사들도 처음 접하는 백신에 대해 의사의 자의적 판단을 따르라고 하니, 의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의 정부 기조와 정반대되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사들에게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평소부터 의사의 판단을 믿고 확실한 신뢰를 보내줬으면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의사도 자신 있게 환자를 설득하고 진료할 수 있다. 서로의 믿음직한 대화가 이어져 언젠가 정부와 의료계 간의 끈끈한 신뢰가 생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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