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회장은 기본에 충실하고 어려운 길로 가시라...회원들을 위해 끈질기게 설득하고 타협 이끌어내야"

[차기 의협회장에게 바란다 릴레이 기고]⑤ 송우철 전 의협 총무이사

올해 8월 의료계 파업과 9월 4일 의정합의 이후 전공의들은 아직 파업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대생들의 국시 미응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국회는 각종 의료계를 옥죄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의료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후보자 등록이 2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로부터 차기 의협회장이 투쟁과 협상의 갈림길에서 회원들과 함께 갖춰야 할 덕목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차기 의협회장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해보고자 릴레이 기고를 마련했다. 

차기 의협회장에게 바란다(글 싣는 순서, 마감순)
①여한솔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전 대전협 부회장
②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 회장  
③최상림 경상남도의사회 의장
·민초의사연합 임시대변인
④이상호 국민의힘 보건위생분과위원장
·대구시의사회 총무이사
⑤송우철 전 의협 총무이사 
⑥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 보험부회장·전 의협 기획이사
⑦안치석 충청북도의사회 회장 
⑧행동하는 여의사회 
⑨박상준 전 의협 경남대의원 
⑩이주병 충청남도의사회 수석부회장·전 의협 대외협력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계 뿐 아니라 국내외 정치, 경제가 격랑 속에 있다. 한 치 앞으로 내다보기 어렵다. 지금 단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작금의 정세 변화와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올 한 해 의료계도 큰 시련을 겪었다. 국회와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악법은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의료기관들의 심각한 경영 악화도 그 중 하나이다. 전염병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설상가상 쏟아지는 악법에 기도 차지 않는다.

내년이라고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 와중에 차기 의협회장을 선출한다. 현 회장은 지난 9월 세번째 불신임 투표에 오르며 재임 중 최다 불신임 투표라는 의협의 새 역사를 썼다. 의협회장에게도 레임덕이 있다면 그는 그 이후 레임덕에 빠진 듯 무기력해 보인다.

'차기 의협회장에게 바란다'는 제하의 기고 청탁을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차기 의협회장에게 바라는 게 있었나?' 아니, '우리는 의협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하는 솔직한 심정 때문이다. 

한때 의협에 몸담고 있었던 자가 이렇다면 일반 회원들의 정서는 오죽할까.

사실 의협에서 회장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의협 정관과 각종 제규정 어디를 살펴봐도 회장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 뚜렷하게 명시된 바는 없다. 

다만, 협회를 대표하고 회무를 총괄한다(정관 제 14조)고 규정돼 있을 뿐이다. 임원에 대한 업무 분담 규정에도 회장의 업무에 대한 규정은 없으며, 오히려,정관과 각종 제규정은 30명 이내의 상임 이사에게 업무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각 상임이사는 회장이 임명하므로, 사실 회장의 가장 큰 권한은 이사에 대한 임명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대의원회가 추인해야 한다. 즉, 회장이 얼마나 유능한 이사를 임명하느냐 하는 것이 회장의 능력을 가늠한다 할 것이다.

역설적으론 회장이 현안 전면에 나서서 전권을 휘두르면 그건 정관 위반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회장은 협회를 대표할 뿐 무엇을 결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협회 내 주요 사안에 대한 결정권은 회장이 아니라 대의원총회에 있으며, 이의 실행 조직은 이사회다. 주로 상임이사회가 대의원총회에서 수임 받은 업무를 추진하고 주요 사안을 의결하게 된다. 이 때 회장의 역할은 회의를 소집하고 의장이 되는 것이다.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회장들은 불신임 투표에 회부되거나 실제 불신임됐다. 

이렇듯 의협 회장은 대통령이나 지자체 단체장과는 다르며, 이들이 선거 공약을 통해 표를 얻는 것과 달리 의협회장 후보의 선거 공약은 사실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왜냐면 앞서 얘기했듯, 의협의 나아갈 바는 회장이 아니라 대의원총회가 결정하는 것이며, 회장과 상임 이사회는 총회가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협회장의 능력과 덕목은 무엇일까?

바로 협회를 제대로 대표할 수 있는 것, 즉 지역, 직역, 전공, 연령 등 씨줄 날줄로 나뉘고 갈라진 회원들을 하나로 뭉쳐낼 수 있는 능력, 폭넓은 회무 경력과 인맥으로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업무를 추진하도록 밀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투사 이미지를 갖는 회장을 뽑았다. 마치 수렁에 빠진 의료계를 구원해 낼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웅은 없었다. 애초부터 헛된 기대였고 망상이요, 협회 정관과 구조를 제대로 몰랐던 탓이다.

의협은 생각보다 업무량이 방대하다.

협회에 백여명의 직원이 있고 막대한 예산을 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금처럼 악법이 쏟아져 나오지 않아도 전염병 사태로 극심한 혼란이 없었다고 해도 협회가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협은 수성전(守城戰)을 펼쳐야 하고, 다른 의료 단체나 정부, 국회, 환자 단체 등은 공성전(攻城戰)을 펼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밀리면 작게는 의사의 업무 범위가 줄어들고, 크게는 결국 환자들이 손해를 본다.

이 싸움은 매일매일 벌어지며, 협회가 생긴 이래 근 백 년에 걸쳐 진행돼 왔다.

의사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과거에는 좀 더 손쉬운 싸움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매일매일 회원들의 진정(陳情)과 불만에 더 귀 기울이고, 국민과 다른 동업자들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적(?)들의 음모를 사전에 파악해 대비하는 것이다.

한편, 평소라면 정부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왜냐면 정부는 원한과 반목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과 타협의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이요, 내키든 아니든 정부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회장들이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부와 척 지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대부분 참혹했다. 

정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거나 회의를 비토하며 회의장을 뛰쳐나오는 건 쉬운 일이지만, 끈질기게 설득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과거 의협은 쉬운 길을 골라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굳이 새 회장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기본에 좀 더 충실하고, 어려운 길을 가시라는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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