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의사회 창립과 활동①

[경북의대 100주년 칼럼] ⑰이원순 대구광역시의사회 명예회장

경북의대 100주년, 새로운 100년을 위해  

2023년은 경북의대 전신인 대구의학강습소로부터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다. 경북의대는 한 세기 동안 훌륭한 의료인과 의학자를 배출한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의학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금까지 배출된 9000여명의 졸업 동문은 환자 진료 및 의학 연구에 매진해 국내외 의료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북의대는 2023년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경북의대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와 함께 지나온 10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릴레이 칼럼을 게재한다. 

①권태환 경북의대 학장·경북의대 100주년 공동준비위원장
②박재율 경북대 의과대학 동창회장·중앙이비인후과 원장
③이재태 경북의대 100주년 자문위원단장·경북의대 핵의학교실 교수 
④김성중 경북의대 31대 동창회 수석부회장·대구 W병원 원장 
⑤김용진 경북의대 100년사 간행위원장·경북의대 병리학교실 교수
⑥이원주 경북의대 부학장·경북의대 피부과학교실 주임교수
⑦정한나 경북의대 흉부외과학교실 교수 
김성중 경북의대 31대 동창회 수석부회장·대구 W병원 원장
최병호 경북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
⑩권정윤 경북의대 안과학교실 명예교수·뉴경대요양병원 원장
⑪김정용 대구 동구보건소장·전 개성공단 협력병원장
⑫이승재 경북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
⑬채성철 경북의대 명예교수(순환기내과)
⑭정진향 경북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⑮안동빈 경북의대 이비인후과학교실 주임교수 
⑯박순우 대구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학장
⑰이원순 대구광역시의사회 명예회장
⑱박성민 대한의사협회 의장 
 
1. 일제 식민지시기 대구의사회의 조직

1911년 4월 29일 일본인들에 의해 조직된 조선의학회의 대구지부가 1915년경 자혜병원내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일제 지배정책에 부응하는 단체로 여겨지며, 1915년을 전후하여 또 다른 이름의 대구의사회가 대화정에 사무실을 마련해 활동했다는 일본어판 대구민단사의 대구제단체소개 부분에 의하면 대구의사회의 역사는 100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1943년 한국인 의사와 일본인 의사가 의사단체를 조직해 활동하다 한국인 의사 8명이 따로 행림구락부라는 단체를 구성해 활동했고 이 단체가 현 경상북도의사회와 대구광역시의사회의 전신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의사회의 활동상이나 조직 등에 관한 자료 부존으로 대구시의사회의 모태라 단정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2. 해방과 대구시의사회 창립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중앙의 건국의사회와 조선의학연구회가 조직돼 활동하다가 1947년 조선의학협회로 통합됨에 따라 1946년 2월 24일 경상북도의사회가 창립됐다. 경상북도의사회창립에 앞장섰던 대구지역 의사들이 1947년 3월(날짜 불명) 일제시기 조선의사협회에서 활동한 바 있었던 박태환씨(박내과의원, 대구시 중구 남일동 77)를 중심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사무실을 마련했다. 

대구시의사회는 창립 초기 해방과 6. 25전쟁으로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회원 관리와 회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며 관심 부족 등으로 당시의 정확한 자료를 확인하기 어렵다.

회장단 구성과 회무 등에서 관련기록 중 일부 상이한 자료가 있으나 대구시의사회의 내부기록을 중심으로 집행부와 회무를 간략히 소개한다.

명칭은 사단법인 대한의사협회 대구광역시지부로서 '대구광역시의사회'라 칭한다. 2023년 3월 말 대구광역시의사회 현재 회원현황은 총 6167명으로 개원회원 2147명(34.8%), 근무회원 2848명(46.1%), 구군지역 근무회원 1537명, 특별분회 근무회원 1311명), 전공회원 877명(14.2%), 공중보건의회원 3명, 휴직회원 292명(4.7%)로 구성돼 있다. 
 
3. 대구시의사회 활동과 업적

초대~제5대 박태환 회장(1947. 3~1952. 3)
1947년 대구시의사회가 창립되고 초대 박태환 회장은 5대를 연임했다. 창립 당시 박태환 회장 자택인 중구 남일동 77번지에 사무실을 열었다가 1949년 중구 동성로 3가 90번지로 이전하고 1951년에는 중구 장관동 34번지로 이전했다. 초대 집행부는 혼란기에 회원 관리와 전염병 예방을 위한 계몽 활동에 주력했다.

제6대~제9대 김영근 회장(1952. 3~1956. 3, 경북의대 제2회 졸업)
1951년 9월 25일 국민의료법이 제정 공포되어 대한의학협회 경상북도지부의 분회로 대구시의사회가 인정돼 전쟁 중 1952년 3월에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6. 25전쟁으로 사회 혼란기에 의료정상화와 부정의료업자 단속과 계몽 활동에 주력했다.

제10대~제11대 송명도 회장(1956. 3~1958. 3, 경북의대 제1회 졸업)
안정화된 회무 운영과 활동을 위한 의사회관 건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건립기금 모금사업을 전개하는 한편 무면허의료행위 단속을 위한 입법 조치를 건의해 1957년 의료법에 명문화 됐다.

제12대~제13대 윤주원 회장(1958. 3~1960. 3)
회세 확장과 회무 증가로 1958년 중구 종로1가 83번지로 사무실을 이전했으며, 1960년 회관 건립기금이 늘어나 대구시 중구 덕산동 123번지 YMCA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했다. 1959년 진료과목 표시 법규 규정 건의와 의사면허세 폐지, 의료일원화를 위한 국민의료법 개정 등을 건의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제14대~제15대 권오성 회장(1960. 3~1961. 5, 경북의대 제3회 졸업)
사회 격변기속에서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세력은 모든 사회단체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제15대 회장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대구시의사회는 해체됐다. 

제16대~17대 김종칙 회장(1961. 9~1964. 3)
5.16 군사쿠데타로 해체된 대구시의사회는 1961년 9월 재건총회를 개최해 재출범하고 회칙개정과 조직강화를 통한 협회 발전을 위해 회원명부를 발간했다.

1963년 9월 31일 처음 발간한 '대구시의사회 회원명부'에는 개원회원수가 39개 반회에 293명, 경북대학교의과대학 부속병원 근무회원 56명 전공의 38명(인턴 15, 레지던트 23), 동산기독병원 근무회원 15명 전공의 26명(인턴 12, 레지던트 14), 대구시립병원 근무회원 4명, 파티마병원 근무회원 6명, 대구적십자병원 근무회원 3명으로 전체 회원수가 441명에 이르렀다.

제18대 황용운 회장(1964. 3~1965. 3)
5.16 군사쿠데타 이후 환율변경으로 인해 대구시의사회관 건축비용이 부족했고, 한때 모금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1963년 총회에서 회칙을 개정해 부회장제도를 신설하고 회관건립 사업을 구체화하는 한편 기금모금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제19대~제20대 송명도 회장(1965. 3~1967. 3, 경북의대 제1회 졸업)
1965년 제10대와 제11대 회장을 역임한 송명도 회장을 재선출했으며 1965년 혈액은행관리법 제정을 건의해 1970년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보건의료정책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제21대~제22대 김정완 회장(1967. 3~1969. 3, 경북의대 제12회 졸업)
회관건립사업 추진과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허위진단서 발행 정화사업을 추진하고, 진단기간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1967년 3월 1일 '상해진단서 심의위원회'를 설치 운영했으며, 의사면허세 대책과 금전등록기 설치문제, 부정의료업자 단속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제23대-제24대 이상성 회장(1969. 3~1971. 3, 경북의대 제17회 졸업)
1969년 6월 10일 회관건립을 위한 소비조합설립 운영과 1969년 7월 10일 소비조합뉴스를 창간해 오늘날의 '대구의사회보' 출발이 됐다. 회관건립기금 모금 운동을 적극 추진해 1969년 11월 29일 현 대구시 북구 대현로 82번지에 120평 부지를 매입했다. 1971년 의사회내 전문의사와 일반의사간의 분열갈등을 통합하고, 행정문서 한글화, 무면허의료행위 단속, 콜레라 방역사업 동참, 종합학술대회를 확대 개최하여 의학발전에 기여하고, 비의사보건소장 임용반대, 회원 결속을 위한 친목야유회 사업 등을 개최했다.

제25대~제26대 이강수 회장(1971. 3~1974. 3, 경북의대 제18회 졸업)
1972년 10월 유신과 함께 언론검열 강화로 대구의사회보 휴간으로 조직강화 활동에 차질이 있었으나 행정기관과 협의해 상해진단서 심의위원회 권한 강화를 통해 의사 단체의 위상을 높였다.

1971년 3월 19일 제20차 정기총회에서 임원 임기를 2년으로 연장하고, 회장은 연임할 수 없도록 회칙 개정안을 의결하고 진료과목 표방 위반 및 과대광고 정화, 1972년 8월 21일부터 야간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야간당번제' 실시, 부정의료행위 근절, 영세민 무료진료권 발행, 보건연구비 지원, 수재민 구호 진료, 자동차보험 단체계약 추진, 한의대 신설 및 의학전문대학교 대책 강구, 새마을사업과 푸른대구 만들기 공원조성사업 참여, 회원 친선교류사업 활성화 등을 추진했다.

제27대 남용진 회장(1974. 3~1976. 3, 경북의대 제25회 졸업)
1974년 적출물 처리 자율정화 활동과 조직강화 활동, 병의원 간판규제 시정 등 의권보호 활동, 무료진료 및 수재의연금 기탁을 통한 지역사회 봉사활동, 학술활동, 1974년 8월 보건소장 보내기 성금 모금 운동과 보건소장 처우 현실화, 1974년 12월 24일 동계새마을 순회진료, 방위성금 기탁, 회원 친선 교류 활동 등을 추진했다.

제28대 김 집 회장(1976. 3~1979. 3, 경북의대 제16회 졸업)
의사신분 보장 및 의료보험 정착화 사업, 1976년 3월 회원 사망시 조의금 지급규정 제정, 임원임기 3년 회칙개정, 금전등록기 설치 반대, 1976년 11월 24일 '의사회관 건축' 기공식과 준공, 자동차보험 지정병원 계약 일괄처리, 불우청소년 무료진료, 이재민 돕기 성금기탁, 1978년 제7회 전국소년체전 의료봉사 및 성금기탁, 춘추학술대회 확대 개최, 1976년 11월 1일 대구시 야간무료진료소 운영 참여, 1977년 3월 30일 푸른대구만들기성금 모금 및 사업, 회원친목운동회 개최 등을 활발히 추진했다.

제29대 홍선희 회장(1979. 3~1981. 6. 30, 경북의대 제16회 졸업)
1977년 7월 1일 500인 이상 산업체에 '직장의료보험제도' 시행에 이어 1979년 1월 1일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 등이 시행돼 의료보험업부가 의료기관의 큰 비중을 차지함에 따라 1979년 의료보험 전담부서 신설, 1979년 4월 15일 대구 중심지 반월당에 상해진단서 심의 연락사무실 설치, 의사신문 보장, 적출물 수거료 조정, 수재의연금 지원 및 구호진료 사업, 경북지역 이동병원 무의촌 순회 진료, 광주시민 돕기 성금모금 기탁, 의료보험 관련 설문조사 실시, 1979년 12월 '검찰의료자문위원회' 설치 운영, 사회지도층 새마을교육 참가, 사회정화 운동 등에 참여했다.
 


대구광역시의사회 창립과 활동

제1대 홍선희 회장(1981. 7. 1~1985. 3. 31, 경북의대 제16회 졸업)
제1대 문시갑 의장(1981. 7. 1~1985. 3. 31, 경북의대 제18회 졸업)


정부의 행정개편에 따라 1981년 7월 1일부터 대구시는 경상북도로부터 분리돼 대구직할시로 승격됐다. 

1981년 7월 7일 개최된 창립 대의원총회에서 초대 회장에 홍선희씨를, 초대 의장에 문시갑씨를 선출했다. '대구직할시의사회'는 산하 각구분회와 특별분회 창립총회를 개최 6개 구의사회와 경북의대, 계명의대, 파티마병원, 대구가톨릭병원의 4개 특별분회로 구성했으며 개원회원 400명, 근무회원 179명, 전공회원 259명, 휴직회원 23명으로 총 861명이었다.

초대 홍선희 회장 집행부는 회칙 전면개정과 총회 대의원제도 도입, 1983년 5월 영남의대특별분회를 승인하고, 1981년 12월 31일자로 공포된 의료법에 의거한 '의료인 보수교육' 실시, 환자유치행위 근절과 과대광고 시정, '의사의료보험조합 설립' 동의서 제출, 1981년 11월 1일 '의사공제회' 가입, 의료기관 상수도료 급수종별 조정, 자보지정병원 일괄계약, 수성지구 시범도로 조경사업, 양로원 무료진료, 새마을지도자 의료시혜, 무의촌 진료, 제65회 전국체전 무료진료 및 후원, 춘· 추계학술대회 개최, 사회정화 및 새마을운동 활력화, 1982년 9월 3일 독립기념관 건립성금 모금, 1983년 의용소방대원 및 유아원교사 의료시혜, 1983년 11월 6일 '어린이회관 건립성금' 및 이웃돕기성금 기탁,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기념 1984년 12월 2일 '영호남의사친선교류' 실시 등 활발한 사업을 추진했다.

제2대 윤건호 회장(1985. 4. 1~1988. 3. 31, 경북의대 제26회 졸업)
제2대 서성탁 의장(1985. 4. 1~1988. 3. 31, 경북의대 제25회 졸업)


제2대 윤건호 회장 집행부는 아프리카 이재민 돕기 성금, '목포지역 의약분업 시범사업' 지원, 야간응급환자 진료당번제 개선, 네온간판 일제정비 및 자율정화 활동 강화와 지역사회에서의 의료인 위상 강화 활동에 역점을 두었으며 1988년 2월 8일 달서구의사회 창립총회 개최로 산하 7개 구의사회와 5개 특별분회가 됐다.

또한 1986년 정기총회에서 회원 사망 시 조의금을 500만원으로 인상 지급키로 하고, 홍선희 전 회장(제1대 회장 역임)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는 한편 유사의료보험조합 개별 계약 단속, 성감별행위 근절, 의원 개설 신고시 의사협회 경유 제도를 도입했다. 1986년 봄 가을 시민건강 계몽지 행림춘추 발간, 농협중앙회대구지회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농가진료비 대지급제 실시, 1986년 8월 7일 의료법 개정 대공청회 개최, 1987년 7월 남해안지방 태풍과 집중 호우 수재의연금 지원과 생필품 전달, 1988년 4월 1일 10개 군의료보험조합과의 단체계약 추진, 수재의연금 모금 기탁, 병의원 상수도료 종별 2종 변경추진, 의료제도 개선 건의, 체육성금 지원, 평화의 댐 건설 성금 모금활동, 회원친선체육대회 개최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제3·4대 조세환 회장(1988. 4. 1~1994. 3. 31, 경북의대 제30회 졸업)
제3대 김장훈 의장(1988. 4. 1~1991. 3. 31, 경북의대 제26회 졸업)
제4대 이상계 의장(1991. 4. 1~9194. 3. 31, 경북의대 제28회 졸업)


제3대· 4대 조세환 회장 집행부는 회무 효율성과 능률화를 위해 업무 분담제와 간소화를 위한 회무 효율화 지침 및 규정 제정,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제도 시행으로 제도 정착과 개선사업, 1988년 4월 8일 법률 및 세무고문 위촉, 무임소이사 제도 신설, 국공립병원 한방과 설치 반대, 1989년 6월 14일 의료보험수가 현실화 촉구 결의대회 개최, 1989년 7월 18일 매년 10월 첫째 일요일을 대구시의사의 날 제정, 1990년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삽시다’ 표제 아래 걷기운동, 마약퇴치, 금연운동, 헌혈운동, 생활체육, 식이요법, 스트레스, 사고, 환경공해, 에이즈 등 대국민 지도계몽사업 추진, 직종 및 지역의료보험체불진료비 청산 촉구, 자동차보험수가 현실화 대책, 1990년 6월 20일 보사부가 제정한 자율지도 운영규칙에 의거 자율지도원 임명 추천, 자율정화 활동 강화, 약국 임의조제급여 반대, 보건의 달 무료진료, 시민건강 캠페인 개최, 언론에 건강상식 홍보, 1990년 5월 20일 대구시와 공동으로 두류운동장에서 범시민 만보걷기대회 개최, 비민주적 의료보험법 개정 등 의료정책에 앞장서는 한편 1991년 응급의료 개선책 건의와 대국민 홍보를 실시했다.

또한 1991년 의료업무 지침서 발간, 1992년 7월 의료분쟁대책기구 설치와 피해보상기금제 설치 촉구, 1991년 3월 보건의료정책위원회 구성운영 활성화, 의료보험 심사기구 독립설치 건의, 의료현안 설문조사 실시, 집단예방접종 근절 건의, 1991년 3월 수돗물 페놀오염사건 시민 계도 및 진료사업, 환경보호 캠페인 실시, 1992년 9월 7일 의료제도 일원화 건의, 완전의약분업 실시 촉구 및 의과대학 신증설 반대 등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 하는 의사상 구현에 노력했다.

제5대·6대 이원순 회장(1994. 4.1~2000. 3. 31, 경북의대 제35회 졸업)
제5대 이봉조 의장(1994. 4. 1~1997. 3. 31, 경북의대 제31회 졸업)
제6대 최영달 의장(1997. 4. 1~2000. 3. 31, 경북의대 제31회 졸업)


제5· 6대 이원순 회장 집행부는 지역사회 봉사와 의료정책에 대한 선도적 역할 수행, 신뢰받는 의사상 구현을 다짐하고 출범했다. 1995년 1월 1일 달성군이 대구시에 편입되어 8개 구군의사회와 5개 특별분회가 되었으며 정부의 행정구역 광역화 조치에 따라 대구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고 본회도 '대구광역시의사회'로 명칭이 변경됐다.

대의원 당연직제도를 도입하고 1998년 동원약품 후원 '대구광역시의사회 학술상' 제정, 사무국 직제개편과 효율화 추진, 응급의료현실 대국민 홍보, 1994년 10월 12일 취업정보센터 개설과 회원 설문조사 실시, 의료분쟁 조정법 제정 건의, 의료현실 대국민 홍보, 1994년 12월 청소년 의학강좌 개최, 1995년 4월 29일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부상환자 진료 및 성금 기탁, 1995년 8월 저소득층 무료개안수술 실시, 1995년 3월 28일 제1회 장애인돕기 자선음악회 개최, 1995년 6월 9일 대구의사신협 창립, 1995년 9월 25일 회원 종합예술전 개최, 이웃사랑 헌혈 캠페인 개최, 언론기관 건강칼럼 게재, 1996년 1월 1일 '잘못 알려진 건강상식 바로 잡기' 캠페인 실시, 성인병 언론 강좌, 1996년 11월 30일 의료정책 바로 세우기 대토론회, 의사보건소장 임용 대책, 1997년 7월 11일 개방형병원 운영 심포지엄 개최, 교육청 불법집단 예방접종 근절 대책, 의료분쟁 관련 청원서 제출, 1997년 10월 13일 창립 50주년 기념사업 실시, 1998년 5월 25일 보라매병원 의료분쟁 사법판결에 대한 제도적 장치마련 건의, 의약분업 대책 강구, 1998년 7월 7일 전공의 회무 참여 확대, 1998년 9월 30일 결식학생 무료진료 실시, 1998년 11월 15일 대구시의사회 50년사 발간, 1997년 9월 22일 대구광역시의사회 발전기금 기탁, 의료분쟁조정법 제정과 의료일원화 정책 수립 등 회원의 권익 신장과 발전사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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