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의대 증원 제동에 대통령실 "판사 월권" 격앙 반응…"반민주적 작태" 비판

행정작용, 대통령의 통치행위도 '사법심사' 대상이라는 판례, 30년 전 확립된 내용…"군주정 시대 있을법한 언동"

용산 대통령실. 사진=대통령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서울고등법원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브레이크를 건 가운데 대통령실의 반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실이 판사의 '월권'을 운운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을 두고 반헌법적인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2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대통령실의 언동을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30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문제를 제기한 의대생‧전공의‧의대교수의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5월 중순까지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 정원 최종 승인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정부의 모든 행정작용은 사법 통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 사법부의 심사를 받지 않는 정부의 행정행위가 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며 정부에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제출하라고 밝혔다.

사실상 사법부가 정부의 행정 절차에 제동을 걸면서 그간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등 의료계의 반발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강행했던 정부도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의대 정원 증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2000명 증원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밝히며 제22대 총선 전후로 직접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했던 내용인 만큼 대통령실이 크게 술렁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 등 다수 언론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관의 월권이다. 무책임하다. 행정부가 사법부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 어이가 없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 대통령실과 정부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통령실의 반응에 의료계 측은 분노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행정부의 행정작용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인 '통치행위'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판례는 이미 30년 전에 확립됐으며, 이제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는 법상식으로 확립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6년 헌법재판소는 김영상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기습적으로 실시한 데 대한 반대 세력들의 헌법소원에 대해 "대통령의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성이 있다면 사법부의 심판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즉,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행해진 국가작용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기본권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판결이다.

2004년에는 대법원이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에 대해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법치주의 구현을 책무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인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범죄혐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로 판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실시한 통치행위조차 법원의 심사 대상이 된다는 법 원칙이 이미 30여 년 동안 확립된 것을 알 수 있다"며 "이에 비춰, 대통령실의 이번 반응은 너무나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몰역사적인 태도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은 "법관이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도록 책무를 다하겠다"며 "헌법 정신을 되새겨 사법권 독립을 수호하고 공정한 재판을 달성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변호사는 "그런데도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법관을 겁박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며 마치 법관을 행정부의 시녀처럼 대하며 군주정 시대에나 있을 법한 언동을 일삼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작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5월 준순 경 나올 서울고등법원의 집행정지 결정 결과에 이의가 있다면 대법원에 재항고하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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