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의사에게 필요한 건…자신의 삶과 가치·건강의 균형 유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의대생 인턴기자의 선배의사 인터뷰] 문재영 교수 "전문가들은 근무 여건 개선을, 의대생·전공의들은 삶에 대한 고민부터"

세종충남대병원 문재영 교수는 "평생 의사를 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분야는 무엇인가" 고민하다 중환자의학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사진=줌 화면 캡처 

[메디게이트뉴스 최지민 인턴기자 고려의대 예1, 황성준 인턴기자 가천의대 예2] 중환자실은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이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근무 여건은 어떨까. 그리고 중환자실 의사에게는 어떤 역량과 자질이 필요할까.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실장인 문재영 호흡기내과 교수와 함께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중환자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문 교수는 "지난 10년간 중환자실 세부전문의는 70% 늘고 중환자실 근무 여건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근무 여건이 더 나아지게끔 보건정책 담당자를 만나 설득하고, 이에 대한 근거자료를 내놓기 위한 연구 결과를 현장의 전문가들이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는 "'의사로서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평생 의사를 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분야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후회없는 전공 선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현재 대한중환자의학회 윤리법제이사와 한국의료윤리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다. 또한 문 교수는 최근 중환자실 치료 후 환자들이 겪게 될 다양한 문제들과 삶의 질에 대해 다룬 'Textbook of POST-ICU Medicine' 번역서를 펴냈다. 이 책은 지난 50년간 중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발전을 거듭해온 중환자의학의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다루고 있다. 

"의사들이 다 퇴근하면 중환자실 환자들은 밤에 누가 치료하나" 고민하다 중환자의학 선택  

-호흡기내과, 그리고 중환자의학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공중보건의로 지역에서 일하면서 내과를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특수한 전문 분야보다는 내과학을 두루두루 익히고 알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심장학과 호흡기학이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전공의 수련 중에도 심장내과와 호흡기내과가 가장 재미있었다. 급성과 만성 질환으로 나눠본다면 종양학은 급성기 치료(acute care)라고 할 수 없고, 심장내과는 급성기 치료(acute care)가  중심이었다. 호흡기내과는 금방 치료하고 좋아질 수 있는 급성기 질환도 있고, 만성 질환도 있어 두루두루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흡기내과를 선택했다.

호흡기내과 펠로우를 해보니 호흡기학 분야에서도 천식, 종양, 결핵 등 다양한 질환과 분야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를 느꼈던 중환자의학을 선택했다. 가장 궁금하기도 했고 이 분야를 더 배우고 트레이닝을 끝내야 나 스스로 내과의사로서 잘 갖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전공의 시절에는 교수님들과 낮에 회진하고 열심히 환자를 보다가도 의사들이 밤에 다 퇴근하면 중환자실에 간호사들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밤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과 병동 당직 전공의로는 부족하지 않나’, ‘이 사람들을 밤에 누가 치료해주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내가 직접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환자 전담 전문의가 담당하는 환자 수는 보통 얼마나 되나. 

병원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내과 전공의가 수련을 받을 때 적게는 15명에서 25명 정도의 환자를 본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전공의가 그렇게 많은 중환자를 감당할 수는 없다. 여건이 좋은 병원에서는 중환자 4~7명 정도를 본다. 이보다 더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다. 주간 근무시간동안 전문의 한 명이 전공의 두 명과 함께 일한다면 10~15명 정도의 환자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보통 중환자실 1개 유닛(unit)단위에는 14~20개의 병상이 있다.

전공의 수, 환자들의 중증도, 기타 전문인력 수 등에 따라 적절한 환자 수는 다를 수 있다. 

-중환자실 환자들의 특성은 어떤가. 중환자실 의사라면 어떤 질환을 잘 알고 준비해야 하는가.

중환자실에는 장기 기능 부전 환자가 많다. 심장, 폐, 간, 콩팥, 뇌, 내분비계 등 장기 기능 부전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자들이 주로 오게 된다. 혹은 장기부전의 위험이 있어 집중 감시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중환자실이 필요하다. 수술 후 고위험 환자들은 합병증 발생과 생리학적 변화를 집중 관찰해야 한다. 이 환자들은 생리학적 변화를 스스로 보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내과의사로 내과계 동반 질환 등에 의한 장기부전, 패혈증, 패혈성쇼크를 주로 맡아서 진료하고 있다. 

내과계 중환자를 보려면 내과 분야 전공의 수련을 잘 받으면 되고, 외과계 중환자를 보려면 외과학 전공의 수련을 충실하게 받는 것이 기본이다. 그 다음 중환자 치료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내용과 표준 지침들을 배우고 익히면 된다. 내과, 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신경과, 소아청소년과 등 8개 전문 분야 수련을 마치고 중환자 의학 수련프로그램이 있는 병원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이수해 자격을 획득하면 중환자의학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의 근무 양상과 하루 일과는 어떤가.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들마다 근무 패턴과 생활패턴은 획일적이지 않다. 아직까지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적은 수의 의사들이 부담을 나눠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병원 구성원들의 인식과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 지금보다 여건은 점차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수는 70%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중환자실 의사들의 업무량에 대한 인식 개선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충분한 수의 중환자의학 전문의들이 과도한 업무량 부담에서 자유로워져야 중환자들에게 더 좋은 치료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중환자실 입원 저수가 문제가 매번 화두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보건의료 문제의 해결책을 수가에서 찾곤 한다. 일정 부분은 그렇다. 우리나라는 원-페이어 시스템(one-payer system)으로 국가가 정해진 수가에 따라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수가 보상체계에 의료 행위들이 많이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보건의료라는 영역은 사회의 핵심 시스템이지만, 여러 시스템 중의 일부다. 국가와 사회가 운영되려면 국방, 무역, 주택, 식량, 치안, 소방, 사회복지 등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영역에 적절하게 예산이 배정돼야 한다. 

중환자의학이라는 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회적인 합의와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중환자실 의료인들에게 중환자 관련 수가 문제가 늘 더 중요해 보이고 국가 예산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동일하게 응급의학 분야, 심장질환 분야의 전문의들은 자신들 분야의 문제점이 커 보인다. 의료계나 한 병원 안에서도 수가, 예산 배정 등이 합리적으로 합의돼야 하듯이 사회에서 보건의료나 중환자의학 분야에 어느 만큼의 예산을 어느 정도의 우선 순위로 배정할 것인지는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다.

분명한 건 중환자실 여건은 과거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중환자의학과 관련한 여러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고 학회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15년 전에는 간호사 한 명이 중환자 3~4명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하면 간호 수가도 차등을 받고 사회적으로도, 병원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열악한 인력 구조로 취급한다. 

단순히 현행 수가에서 중환자실 운영은 적자이지만, 수가가 오르면 문제들이 저절로 개선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정리하자면 보험 수가 개선뿐만 아니라 중환자실 현실 개선을 위해 현재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국민들의 인식 전환, 중증 치료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 각종 의료 시스템 개선, 의료계 내 합의가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국내 중환자 치료 여건이 개선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단시일 내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변화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접근해야 이룰 수 있다. 보험 수가가 모든 문제를 단박에 풀 수 있는 만능열쇠라는 인식을 고집하면 사회적 합의, 국민들의 인식 전환 등 더 넓은 시야에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등한시 할 수 있다.
 
문재영 교수는 의사로서도,개인으로서도 삶의 가치를 찾아 진로 선택을 할 것을 조언했다. 사진=줌화면 캡처 

"평생 의사를 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분야는 무엇인가"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는 어떤 성향이나 성격과 더 어울릴까.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로 진로를 선택하고 싶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과거에는 전공마다 어울리는 적합한 성향이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보니, 항상 발전한다는 인간의 특성과 능력을 고려했을 때 ‘부족한 것은 배워서 채우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하기 위한 역량이나 마음가짐은 있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라면 필요한 성향을 따지기 보다는 충실히 수련 받으며 필요한 기본 임상능력을 갖추는데 노력하길 바란다. 성향이나 성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나한테 가장 재밌고 내 인생에 소중한지를 따져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한 답을 찾는 과정에 중환자 의학이 떠오른다면 진지하게 권해보겠다. 

지도학생이나 후배들에게 '평생 의사를 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분야가 있는지'를 꼭 물어본다. 나 또한 중환자의학 수련을 받아보지 않으면 내과 의사로서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이 분야를 선택했다.

중환자의학은 많은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8개 진료과목 전문의가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가 되는데,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이니 그들이 모두 다 같은 성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정 성향보다는 중환자의학에 궁금증과 열정이 큰 사람이 도전하는 것 같다. 의사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이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가를 항상 고민해야 후회 없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중환자실에서는 여러 직역간의 협력과 협동이 필수적일 것 같은데, 이에 대해 필요한 태도와 자질은 무엇인가. 

중환자실은 간호사, 호흡치료사, 전문약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간호조무사(assistant/technician), 사회복지사, 목사, 신부, 행정 사무원, 영상의학 기사, 환경사 등 많은 직종 사람들이 중환자 치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이들이 중환자실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엇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리더인 의사의 역할 중의 하나이다. 이들과 함께 동료로서 일한다는 인식, 이들이 중환자 치료에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중환자실에서의 의사 리더십은 핵심이다. 동료 의사들끼리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다른 직종과 협력해야 하는 의사에게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타직종과 갈등을 겪는 젊은 의사들의 경우 ‘팀리더로서 의사의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이 흔한 원인이다. 의과대학에서 리더십 트레이닝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이 늘 아쉽다.

동료 의사들과 일할 때는 ‘내가 틀릴 수 있다. 내 판단과 지식이 틀릴 수 있다’라며 자신의 오류를 빨리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의사들과 협력하지 못하고 독단적이거나 독선적이어서는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제공할 수 없다. 의사 개인의 능력만으로 중증 환자를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환자의 생사를 눈앞에 두다 보면 감정이 날카로워지거나, 때로는 본인이 소진돼 동료들에게 실수할 수도 있고 냉철할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의사 스스로 오류는 빨리 반성하고 관계와 상황은 원상복구시켜야 한다. 중환자실 의사에게 리더십과 협력, 자기관리, 인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실습과 수련을 시작하지 않아 아직 중환자실을 경험하지 못한 의대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처음부터 ‘의사로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로부터 오는 당연한 두려움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불필요하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사가 되는 과정은 길다. 지식은 많을수록 좋지만 충분히 많은 경험도 필요하다.호흡기내과 의사라고 해서 호흡기내과 전 분야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그만큼 자신의 분야에서 임상 대처능력을 키우게 된다. 간이식 외과 전문의의 예를 들어보자. 사람마다 해부학적 다양성은 크다. 간문맥과 간혈관 분포가 모두 다 똑같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더 좋은 수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단시일에 '마스터'가 되는 방법은 없다. 늘 환자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하루하루 지식과 경험을 쌓아갈 때 의사로서 완성될 수 있을까? 의사는 평생 배운다는 말도 그런 의미인 듯하다.

중환자 의사라면 가치, 삶, 건강의 균형을 유지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도 고민해야

-중환자의학 교육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중환자의학 교과과정과 수련 프로그램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교과과정에서 삶에 죽음에 대한 이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중환자실의 평균 사망률은 15% 내외이고 중증 환자가 많은 병원은 사망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단순히 유추해보면 자신이 매달 맡아볼 환자가 50명이라면 10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의사들이 경험하는 죽음 이상을 우리는 매달 겪어야 하고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 스스로 가치, 삶, 건강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과정은 연구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가.  

최근 중환자의학은 실험실적 연구, 융복합 연구, 의료기기 개발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연구가 활발한 분야 중 하나다. 많은 중환자의학 전문의들이 패혈증, 급성호흡곤란증후군 등 다양한 중증 질환의 메커니즘을 증명하고 연구하고 있다. 환자들의 임상 데이터를 분석해 영향력 높은 해외 유수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연구자들도 많다. 여러 병원의 의사들이 협력하는수준 높은 다기관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임상 연구 성과들을 모아 꾸준히 진료 지침을 개정하고 있기도 하다. 급성호흡곤란증후군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지난 3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표준진료지침을 끊임없이 개선했고, 덕분에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현대 의학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데, 이에 맞춰 중환자실과 중환자의학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진료 등이 의료 현장에 빠르게 도입될 거라는 기대와 예측에는 회의적이다. 반드시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단시일내 급격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를 의료현장에 접목시키기 위해서 제도와 법 등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디지털 헬스케어나 원격의료 기술을 의료현장에 적용하려면 관련한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가령 현재 응급 의료체계를 보자.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흉통 때문에 119구급차로 이송하게 되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할 것이 아니라, 관상동맥개통술을 시행 수 있는 병원으로이송해야 한다. 그러려면 환자가 심근경색인지 아닌지 구급차 안에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원격 진료 기술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라면 응급구조사가 환자의 심전도를 찍어서 원격으로 관제센터에 보내고, 관제센터에 소속된 의사가 심전도를 판독하고 진단해 관상동맥개통술이 가능한 병원을 안내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법과 제도라면 구급차 안에서 구조사가 환자의 심전도를 검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둘째, 법과 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뀐다고 바로 해결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의료는 대부분 민간이 주도하는 산업 분야다. 민간 사업은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수익 차원에서만 접근을 하면 윤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잠재적인 윤리적 문제를 모두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장 이러한 기술을 중환자실과 중환자의학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만약 일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진료 효율성을 높이고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중환자실은 죽기 전에 거치는 곳이라는 통념이 있는데, 이러한 통념을 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중환자실에 대한 통념을 바꿀 수 있는 홍보활동을 많이 하고 싶다. 중환자실과 중환자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같은 의사들 사이에서의 오해, 의대생들의 시선에서 오해가 풀린다면 지원자가 많아지고 근무 환경도 더 나아질 것이다. 메르스 이전, 심지어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의료인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를 우리 사회에서 표현한 것을 기사 몇 개 외에는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동안에는 코로나19 중증 병동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보건소 방역 요원들이 힘든 상황에서 일하고 헌신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보게 된다. 좋은 홍보를 기획하면 사람들이 몰랐던 면들을 잘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중환자의학을 진로로 선택하려면 의료계나 정부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아울러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에 관심이 있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헌신과 보람만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미래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중환자실의 근무 환경과 인력 등 여건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 더 나아지게끔 보건정책 담당자를 만나 설득하고, 이에 대한 근거자료를 내놓기 위한 연구 결과를 현장의 우리 전문가들이 도출해야 한다. 동시에 직접 노력해서 그 실현 가능성도 보여줘야 한다.

정보가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비전만을 쫓기보다는 자신이 열정을 갖고 일하고 싶은 분야를 호기심을 갖고 탐구해야 한다.특히 의사로서도,개인으로서도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헌신과 희생을 앞세우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나의 가치, 나의 역할, 내가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길 바란다. 그것을 찾으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수련 중에는 최선을 다해 많은 임상경험과 지식을 습득하려 노력하고, 본인이 찾은 가치를 실현해 나갈 준비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면 어느 덧 한 명의 의사로 성장한 자신을 마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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