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타카(GATTACA)의 미래가 다가온다면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사진: 영화 가타카 스틸컷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GATTACA)'의 제목은 DNA의 염기 서열인 A, T, G, C의 철자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가 그리는 미래사회에는 유전자가 인간의 직업과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에, 인간의 유전자 조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 가상의 미래사회는 열성인자가 제거된 인공수정을 통해 우성인자만을 지니고 태어난 '엘리트 아이'들이 지배계층을 이루고, 자연 수정을 통해 배합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는 '신의 아이'들은 이 지배계층의 통제와 감시를 받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영화는 이 '신의 아이들' 계급과 '엘리트 아이들' 계급의 각각의 운명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먼은 자연적인 유전자 조합을 가지고 태어난 신의 아이다. 빈센트의 유전자 분석 결과는 그의 심장 질환 조기 발병과 범죄자로의 성장과 31세 경의 사망을 예측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빈센트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주 비행사가 되는 꿈을 갖는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그는 우주 비행사가 되는 그 어떤 시험이나 면접도 통과하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집을 나선다.

청소부 생활을 전전하다가 우주탐사팀을 보내는 회사인 '가타카'에 청소부로 입사한 빈센트는 자신의 유전자에 의해 예견된 미래에 반기를 들고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시작하는 내용이 전반적인 영화의 스토리이다.

도덕과 윤리, 인간의 존엄성 위에 우월한 유전자를 배치한, 가타카의 미래사회가 벌써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지난 11월 27일 중국의 한 과학자가 세계 최초의 유전자 조작 신생아를 낳는 과정을 주도했다고 밝혀 엄청난 논란을 낳고 있다. 중국 선전시 남부과학기술대의 허젠쿠이(賀建奎) 박사는 바로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유전자를 조작한 체외수정 배아를 제3의 산모에게 착상시키고 건강한 쌍둥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도왔다고 발표했다.

만약 이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이는 생명공학이 금기로 여기던 경계 한쪽을 뛰어넘어선 전무후무한 사건에 해당된다. 게다가 이 연구결과가 정식 논문 출간 혹은 발표나 검증 과정을 통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 가위 관련 학회의 강의 중에 흘러나온 소식을 기자가 기사화한 것이어서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어느 특정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돌연변이가 생겨 해당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 기능이 크게 바뀌면 유전질환으로 이어진다. 수천개의 염기서열에서 단 하나의 염기 돌연변이로도 심각한 유전질환이 가능하다. 이러한 단 하나의 염기 돌연변이인 '점 돌연변이'의 염기를 정상으로 바꾸도록 교정할 수 있고, 이를 수정란 단계에서 성공적으로 교정한다면, 유전질환을 지닌 사람을 애초에 교정할 수 있게 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자 가위로 염기서열을 변형하고 원하는 염기로 바꾸는 기법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유전자 가위 염기 편집은 미래의 안전하고 유용한 유전자 치료술로 발전할 수 있을까? 여러 논란 중, 이번 중국 과학자의 이 사건은 과연 인간 수정란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 그리고 누구의 권리로 다른 사람의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지, 유전질환 뿐만 아니라 정상인 수정란에 잘못 적용되어 일명 '디자이너 베이비'의 대량 배출 가능성은 없는지에 관한 뜨거운 논의를 부추기게 됐다.

그 후 논란의 한 중심인 허첸쿠이 교수가 실종되었다는 보도도 있었고 엄중처벌을 운운하는 중국정부의 발표가 보도됐고,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의 유전자편집에 대한 가이드라인 패널 구성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허첸쿠이 교수의 학계를 경악시킨 또다른 이유는 정상인의 수정란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심각한 유전질환을 지닌 수정란의 편집 또한 윤리적인 논란이 필요한 상황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선천적인 면역력을 부여하는 의도를 가지고 정상인의 수정란을 편집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간 배아의 유전체 편집에 대한 찬반 측을 살펴보면, 찬성 측은 유전적으로 변형된 GMO 인간을 조작하는 방향은 제한하되, 유전자 질환 환자의 이익을 명목으로 제시한다. 반대 측은 유전자 가위 기술의 안전성을 문제로 삼는다.

현재까지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해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편집하는 실험 결과는 이 기술의 몇 가지 한계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 배아에 이 기술을 적용했을 때 원하는 대로 편집되지 않은, 편집 효율에 대한 문제다. 타겟 유전자 외의 엉뚱한 유전자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는 종국에는 인간 배아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윤리성 문제가 심각하다. 아직 인간 배아와 태아의 유전자 치료가 금지된 국내 실정에서 위의 논점들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인간의 유전자를 앞에 두고 어떤 유전자가 정상이고 어떤 유전자가 비정상인가? 어떤 사람이 정상이고 어떤 사람이 비정상인가? 다수라고 해서 더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의 상류 계층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부과해 주는 유전자라고 한다면 과연 더 우월한 유전자인가? 의사결정의 능력이 없는 수정란 단계의 개체에 유전자 편집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의 권리로 가능한 것인가?

날이 갈수록 유전체 검사 비용은 점점 더 저렴해지고 일반인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와 있다. 이제는 누구나 본인의 유전체 검사를 쉽게 의뢰하고 분석 결과를 가까이 할 수 있게 됐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가 많은 이들의 건강정보, 질병관리, 심지어 일상 영위의 결정들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영화 가타카가 과장되게 그렸던 미래의 어느 날이 이제는 더 이상 과장된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의 초입에 우리 모두가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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