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공공과 민간 의료 사이의 적절한 레시피
의료는 공공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매우 큰 비용이 소비되는 영역이다. 그래서 각 국가는 각자의 가치에 맞춰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제도와 민간의료시장을 조율하며 관리한다. 미국처럼 대부분의 영역을 민간 시장에 맡기기도 하고, 영국이나 스웨덴처럼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기도 한다.
각각 큰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 사이에서 어느 정도로 조율할지에 대한 논의가 늘 활발하다. 민간에 의료를 맡기면 신약 개발이나 신의료기술 발달과 같은 장점을 누릴 수 있지만 소외 계층과 의료 사각지대가 늘어난다.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면 의료비가 공짜인 대신 극도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국민들이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재정 낭비나 의료인력 유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다른 나라는 흉내 내지 못하는 절묘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레시피의 비결을 '저수가에 허덕이는 필수 의료진들의 과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레시피 덕분에 코로나19(COVID-19) 상황에서 타 국가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헤쳐 나오고 있다. 방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국민들의 노력 또한 큰 도움이 된 것도 물론이다. 괜히 국난 극복이 취미인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자꾸 한 쪽의 좋은 면만을 강조해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주입하고 정책을 이끌어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유럽식 무상의료’에 대한 맹목적 찬양이다. 국가 간 소통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일부러 한국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는 교민들의 경험담들이 퍼지면서 환상이 다소 걷히긴 했지만, 여전히 이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그 민낯이 절절히 드러났다. 공공 의료를 강화해 온 이탈리아는 심각한 수준의 위기를 맞이했고 유럽 사태의 진원지가 됐다. 무상의료와 공공의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은 총리마저 감염돼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고, 높은 치명률과 함께 심각한 의료진 유출 문제와 비효율성을 드러냈다. 스웨덴은 자국의 의료자원으로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자 ‘걸려서 방역한다’는 국민 임상시험을 감행했다.
한 커뮤니티에서 본 댓글이다. ‘저게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던 선진국이야?’
이제 유럽식 무상의료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타국의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가면서 의료진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레시피를 개발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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