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낮에는 낮답게 생활하라."
서울대병원 이유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낮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불면증 극복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건강한 낮이 곧 건강한 잠으로 이어질 수 있단 이유에서다.
이유진 교수는 7월 8일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열리는 '슬립테크 2021-대한수면의학회 특별세미나'에 연자로 참석해 '불면증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유익한 정보들을 알려 줄 예정이다. 메디게이트뉴스는 강연을 앞둔 이 교수를 미리 만나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불면증 현황은 어떠한가?
불면증은 흔한 병이다. 증상으로서 불면증은 대개는 10명 중 3명이 경험할 정도이며, 불면장애라는 진단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는 10명 중 1명 정도다. 예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수면제 처방 건수를 분석한 결과, 2011년 상반기에 250만건에서 2015년 상반기 440만건으로 4년 사이에 17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데이터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수면제 처방 건수를 봐도 수면장애 유병률, 특히 수면제를 복용하는 상당수 환자가 불면증이란 점에서 불면증이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면증의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열이라는 증상이 있으면 열이 나는 원인을 찾듯이 과거에는 원인이 있는 불면증이란 개념으로 생각했다. 반면, 최근에는 불면증이 있고 동반질환이 있으면 무엇이 원인이라기 보다는 같이 공존하는 개념으로 본다. 대표적으로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것들이 불면증과 동반되거나 불면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불면증 환자 50~60% 정도는 그런 정신질환을 동반한다.
그 외에 다양한 수면장애, 하지불안증후군 등도 원인적 기여를 하거나 혹은 공존 질환일 수 있으며, 신체질환이나 신체질환으로 사용하는 약제가 불면증 원인이 되기도 한다. 건강하지 않은 수면 습관, 스트레스도 원인으로 꼽힌다.
-불면증을 방치할 경우 건강상의 어떤 악영향이 있을 수 있는지?
정신적 영향과 신체적 영향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불면증은 우울증, 불안 장애 등의 정신질환이 원인 혹은 공존질환으로서 기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면증이 이러한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체적 측면을 살펴보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과거에 우리 병원에서 수면다원검사 받았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심각한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17배 가량 올랐는데 불면증으로 수면다원검사를 한 결과에서도 심혈관계로 인한 사망 확률이 8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는 동안은 혈압이 깨어있을 때 보다 10% 이상 낮아지는데 그런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올라가는 악영향이 발생한 것이다.
-불면증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며 대표적인 치료법은 무엇인가?
잠이 들기 힘들거나, 중간에 많이 깨거나, 새벽에 너무 일찍 깨거나하는 증상들이 한 가지 이상, 일주일에 세 번 이상, 3개월 이상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때 불면증 진단을 내리게 된다. 흔히 불면증 치료를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면증의 가장 핵심적인 치료법은 인지행동치료다. 이런 인식이 생기게 된 데는 우리나라 보험제도 영향이 있는데 사실 불면증의 대표적 치료법인 인지행동치료가 급여화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 우리나라 의료 현실상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인지행동치료를 적용키 어려웠다.
-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해 치료법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인지행동치료는 여러 요소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로 자극조절법이 있다. 불면증이 만성화된 사람들은 침대에서 자지 않은 채 시간을 많이 보내다보니 침대와 불면증이 짝이 돼 버린 상태다. 가령 거실에서 TV 볼 때는 졸다가도 막상 침대에 누웠을 땐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된다. 자극 조절법은 이런 사람들이 잘 때만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해 잠과 침대를 짝지어 주는 식이다.
그 다음은 수면 제한법이다. 약간의 수면 박탈을 통해 잘 수 있는 원동력을 올려주게 된다. 우리 몸은 항상성의 기전이 있기 때문에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을 잘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앞에 두 가지가 행동적 요소였다면 세 번째는 인지적 요소 측면에서 치료다. 불면증 환자들은 흔히 ‘어제 잠을 잘 자지 못해 일을 망쳤다’, ‘7시간 이상은 자야 건강하다는데 꼭 자야 한다’는 식의 역기능적인 생각을 하는데 이를 교정해주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이완’이 중요하다. 불면증 환자는 저녁이 되면 잠을 자지 못 할까봐 몸이 긴장하게 되는데 이를 복식호흡 등을 통해 풀어준다.
이런 여러 방법을 활용하는 인지행동치료를 일주일의 1회를 주기로 4~6번가량 진행하는 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다. 여기엔 당연히 건강한 수면습관에 대한 교육도 추가된다. 그리고 인지행동치료는 처음부터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나진 않고, 환자들도 힘들어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수면제 등의 약물치료도 병행하게 되는데 추후에는 비약물적인 치료만 이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앞서 언급한 우울증, 하지불안증후군과 같은 동반질환이 있다면 그런 질환들도 같이 치료해나가야 한다.
-인지행동치료 급여 기준 등에 아쉬운 부분은 없나?
급여화는 됐지만 진료시간, 인력 문제 등으로 여전히 현실에 적용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재 한 시간 정도 환자를 진료해야 급여를 인정해주고 있는데다, 인지행동치료에 필요한 인력 운용분을 충당할 정도의 수가 수준이 못 된다. 대형병원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규모나 여력이 안 되는 의료기관들에선 활용이 쉽지 않다. 환자들의 접근성과 현장에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좀 더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수면제를 오남용 하는 환자들도 많은데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나?
대표적으로는 수면제를 많이 복용하면 치매를 유발한다는 이야기들이 한 동안 많이 보고됐었다. 아직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밝혀지진 않았는데, 우리나라 건보공단 데이터상에서는 수면제를 썼을 때 치매 위험이 약 1.7배 정도 올라가는 것으로 나왔다. 원래 치매 환자들의 경우 전조 증상으로 불면이나 우울 등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불면증이 치매 발병에 원인적 기여를 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확인할 순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도 졸피뎀 등의 수면제 복용시 단기 기억상실과 같은 부작용이 있어서 특히 위험도 높은 고령층의 경우 기억력,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고령층의 경우 수면제 복용 후에 낙상을 주의해야 한다. 심리적 의존 현상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약을 먹고 손쉽게 잠을 청하는 패턴을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금단현상, 내성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감안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약을 최단 기간 쓰는 것이 중요하며 그 경우에도 반드시 비약물 치료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생활습관 개선 등을 통해 불면증을 완화하고 꿀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하며 과도한 낮잠∙카페인∙음주는 금물이다. 저녁 무렵에 과도한 활동을 해 흥분 상태가 되는 것도 잠을 방해할 수 있다. 잠은 깨어있는 시간과 별도로 생각할 수 없는데 따라서 낮에는 최대한 활동도 많이하고 햇빛도 많이 보며 낮답게 생활하는 것이 좋다. 실제 최근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사회 활동 등에 제약이 생기고 실내 생활이 늘면서 불면증이 악화되는 사례들도 자주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불면증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낮 생활에 집중하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자야한다는 강박에 쏟는 에너지와 주의를 오히려 낮 동안의 일상생활에 기울이라는 것이다. 낮 동안 정상적으로 생활하다보면 저녁에는 자연스레 잠을 청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다음날 건강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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