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반복했던 질문…대한민국 의료계를 대표하는 의협회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차기 의협회장에게 바란다 릴레이 기고] ⑭ 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올해 8월 의료계 파업과 9월 4일 의정합의 이후 전공의들은 아직 파업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대생들의 국시 미응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국회는 각종 의료계를 옥죄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의료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후보자 등록이 2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로부터 차기 의협회장이 투쟁과 협상의 갈림길에서 회원들과 함께 갖춰야 할 덕목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차기 의협회장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해보고자 릴레이 기고를 마련했다. 

차기 의협회장에게 바란다(글 싣는 순서, 마감순)
①여한솔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전 대전협 부회장
②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 회장  
③최상림 경상남도의사회 의장
·민초의사연합 임시대변인
④이상호 국민의힘 보건위생분과위원장
·대구시의사회 총무이사
⑤송우철 전 의협 총무이사 
⑥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 보험부회장·전 의협 기획이사
⑦안치석 충청북도의사회 회장 
⑧행동하는 여의사회 
⑨박상준 전 의협 경남대의원 
⑩이주병 충청남도의사회 수석부회장·전 의협 대외협력이사​

⑪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 
⑫박근태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회장
⑬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
⑭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
⑮좌훈정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료계는 이제 제41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대표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회장에 출마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제한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으며, 회원으로서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든지 출마해 회원들에게 신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천부적 권리라고 하겠다.
 
언론사로부터 차기 대한의사협회 회장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마음이 씁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20여 년동안 수도 없이 많은 건의와 의견 개진을 했지만 이뤄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필자의 기고문에 담겨져 있던 내용들이 황당하거나 시대착오적인 의견이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원고를 쓰기 전에 회고하는 의미로 과거의 생각이 각인된 대표적인 칼럼 몇 편을 훑어보았다. 
 
2001년 11월 2일 의사신문에 '의협의 새로운 집행부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의협 사상 최초의 직선제로 선출된 회장에게 바라는 기대로서 2000년 의권침탈 이후 갈가리 찢어진 의료계 직역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회장의 욕심은 의협회장인지 정치지망생인지 구분되지 않는 일로 점철됐다.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의료계의 일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글 쓰는 사람의 기억이 잘못됐기를 기대해 보면서 그의 행보 속에 의협회장이라는 직책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2002년 1월 24일 의사신문의 칼럼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의사 그리고 의협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을 읽기보다는 나를 먼저 이해해 달라는 의사 집단의 소아병적 자세와 요구는 특권의식으로 비춰지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2007년 5월 21일 메디칼업저버(Medical Observer)에 기고한 글의 제목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의사와 의협이 돼야 한다'였다. 의사들이 겪고 있는 외환(外患)이라는 것도 잘 생각해 보면 의사들의 사회성 결여가 원인이 되어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의사라는 존재는 국민들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졌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정치권력의 책동은 의사와 국민들을 적대적인 관계로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의협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됐다. 
 
의협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난장판'이라고 평가했다. 국민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식자들의 회의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의협 대의원총회장의 모습을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도 했다. 총회에서의 언행은 오합지졸들의 야단법석일 뿐이고, 정치판의 못된 짓을 집대성해 놓았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2014년 7월 18일 데일리메디에 투고한 글 '신임 의협회장에게 바란다'에서 필자는 현재 의협은 국민들과 정부로 부터는 신뢰할 수 없는 이익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고, 동료 회원들로 부터는 음습한 복마전(伏魔殿)으로 치부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평했다. 2000년 초반의 응집됐던 투쟁력은 승화되지 못한 채 부평초가 됐음을 비판했다. 2000년부터 14년간 11명의 회장이 교체됐고 임기를 제대로 마친 회장은 겨우 2명에 불과하며, 평균 재임기간이 16개월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이 모습이 과연 대한민국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의 바람직한 모습인지 자성해봐야 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회장은 의협의 재정적 상황을 직시하라, 회원들로부터 동력을 구하지 못하는 투쟁을 위한 투쟁은 하지 말 것, 의협은 정관에 따라 움직이는 법인체인 만큼 정관에 충실하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은 의협의 생명줄이다, 전문가 단체로서의 사회적 공헌이 필요하다 등의 요구를 제시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어떤 것도 성취된 일은 없고 오히려 의협은 악화일로에 접어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투쟁을 선언하고 당선된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극성 지지자들의 주장에 밀려서 광화문 광장을 전전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지금 다시 신임 회장에게 뭔가를 바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에너지만 소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의협이 존재하는 한 주마가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과거 20여 년 동안 의협회장 선거는 오로지 선거에서 시작해서 선거에서 끝이 났다. 조직은 이미 난파선(難破船)이 됐는데 마치 해적선의 선장 자리를 놓고 끊임없이 다투고, 탄핵해 끌어내리는 아비규환의 반복일 뿐이었다.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라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으나 회장의 임기 3년간에 3번의 탄핵안이 총회에 부의(附議)되는 조직에서 과연 조직의 미래상을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러나 의사들 개개인은 물론이고 의협이라는 의사 대표 단체의 새로운 모습을 통해 사회적 정의와 국민적 정서에 다가가야 하는 숙명적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의사들은 국민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격체가 돼야 한다. 어떤 인격과 능력, 그리고 철학을 가진 사람이 의협회장이 되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의협은 현재와 미래를 아울러야 하는 절체절명의 천인단애에 서 있다.
 
현재 의협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일까?
 
의료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외(外)환경의 변화 속도는 촌각을 다투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핵심적 가치를 발휘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진료행위의 형태, 의학적 연구의 방향, 의학교육의 내용, 의료에 대한 국민적 시각의 변화, 진료행위에 대한 환자들의 참여 등 '최첨단 의학적 지식과 고품격 진료'라는 기본적인 철학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무서운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 의사의 진료 참여는 이제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일 뿐이다. 이제 의사들은 어떤 알고리듬으로 인공지능 의사의 미래를 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스마트 닥터'와 '스마트 병원'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또 다른 형태의 부정적인 외환경도 상존하고 있다. 다양한 정부정책은 항상 의료계와 상충돼 국민들의 감정은 대부분 의료계에 우호적이지 않고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의료계 내부의 상황은 더욱 척박하다. 회원들의 상충하는 제각각의 요구는 점증되고  다양한 직역간의 첨예한 갈등과 이해상충, 선거에 따른 적대적인 진영논리와 격한 투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강력한 투쟁만을 구호로 삼았기 때문에 당선 이후에는 선거공약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반복됐다. 신임 회장의 의협 집행부는 일천한 경험의 미숙한 점령군으로 전락하고 선거에서 대척점에 섰던 회원들은 회장을 길거리로 내 몰아 붉은 머리띠를 두르게 하는 것에 급급한 형편이다. 이러한 이합집산과 불협화음의 결과 의협 회원의 60% 이상이 의협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 의료계 중앙단체의 수장으로 적합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정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의협회장으로서 적임자를 선출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내용들이 고려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소회(所懷)를 밝혀 본다.
 
1. 필자가 위에 적시한 의료계 내·외적 환경뿐만 아니라 후보자로서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의료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보자는 ‘내가 왜 의협회장에 출마하는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자문(自問)하고, 구도(求道)하는 마음과 도덕적 양심 속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2. 대한민국 의료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국제적인 식견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외국어 몇 마디를 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의료계를 국제적으로 어떤 위상까지 격상시킬 것인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
 
3.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사의 사회적인 역할, 국민들 속에서의 자리 매김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4. 의협과 각 시도의사회에 최소한 10년 이상의 실무 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리적인 생각으로 의협을 이끌 수 있다. 개인의 정치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협을 징검다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
 
5. 의협 회장의 포용력은 생명이다. 전임 집행부의 유능한 임원, 선거에서 상대 진영에서 봉사한 인재, 의학·의료관련 단체의 유능한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6. 강력한 대정부 실력 투쟁을 선거 공약의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사람은 후보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합리한 정부 정책에 순응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대정부 항쟁은 과거 20년의 전철(前轍)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대적인 상황과 국민 정서의 변화에 따라 강력한 항쟁의 방법도 분명히 변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와 같이 일부 회원들에게 등 떠밀려 행해지는 노상 투쟁은 얻는 것이 없다. 의사로서 대국민 신뢰만 상실하고 가진 자들의 오만함으로 비춰질 뿐이다. 
 
7. 의협 회장이 회원을 위한 조직을 대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범주 안에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 마음속에서 의사의 위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계의 방향을 예단하고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의협회장의 자격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외람된 일이며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의협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의학계와 의료계를 넘나들면서 현장의 실체를 경험하고 느꼈던 안타까움과 답답했던 마음을 이제 '희망'이라는 메시지에 담아 개인적 의견을 개진해 보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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